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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대 개썰매 경주'아디이타 로드' 참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1천49마일(1천6백78㎞)의 알래스카 설원 위에서 펼쳐지는인간과 동물의 드라마.「최후의 위대한 레이스」란 부제가 붙은 「아이디타 로드」는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썰매경주다.실제로는 1천1백마일이 넘는 거리지만 알래스카가 미국의 마흔아홉번째주(州)인 것을 상징해 통상 1천49마일이라 이야기한다.
달리는 운명을 타고난 레이스견(犬)들은 대부분 늑대와의 잡종으로 허스키라 불린다.내륙지방의 원주민인 아사바스칸 인디언들이강인한 종자만을 교배시켜 만든 잡종으로 가장 우수한 경주견이다. 73년 시작한이래 올해로 24회를 맞는 이번 대회는 지난 2일 앵커리지 시내에서 미국.캐나다.영국.이탈리아.노르웨이.러시아.일본 등 7개국 60개팀이 출전한 가운데 약 10일간의 대레이스가 벌어졌다.
레이스가 시작되던 날 새벽 앵커리지 시내는 허연 숨결을 토해내며 달리고 싶어 날뛰는 1천마리 개들의 울부짖음에 평소보다 일찍 아침이 밝았다.오전10시,여자선수 디디 존로를 시작으로 2분 간격으로 출발했다.
눈길을 박차고 한팀 한팀 출발할 때마다 길가에 몰려든 관중들은 함성을 지르고 춤추며 열광했다.마치 「겨울판」리우 카니발을보는 듯했다.
아이디타 로드는 특이하게 두번의 출발행사를 치른다.총 25개의 체크 포인트를 거쳐야 하는 대회중 제1구간인 앵커리지에서 이글리버까지는 형식적인 행사로 기록엔 포함되지 않는다.그 다음날 와실라에서의 재출발부터 실질적인 개인기록이 되 는 것이다.
이번 대회는 알래스카인들에겐 특히 의미가 있는 시합이었다.지난해 대회에서 아이디타 로드에 처녀출전한 몬태나주의 더그 스윙리가 대회사상 최고기록인 9일2시간42분으로 우승했기 때문이다.이번 대회는 알래스카의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한 대회였다.
아이디타 로드의 룰은 매우 엄격했다.북극권 국가들의 공인된 크고 작은 개썰매시합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어야만 출전신청할 수있고 협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출전자격이 주어진다.선수가되려면 최소한 3~4년 걸린다.출발때 팀을 이 룰 수 있는 개는 16마리까지 허용되며 도착때 반드시 5마리 이상의 개가 들어와야만 한다.
10일간의 레이스에서 선수는 하루 쉴 수 있다.이는 날씨와 컨디션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선수와 개들이 지나치게무리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승자 더그 스윙리,최다 우승기록(5회)보유자 릭 스원슨,지칠줄 모르는 힘을 지닌 제프 킹과 노련한 레이서 팀 오스마등의 선두다툼이 치열했다.여섯번째 구간인 스켄트나에서 전날밤 옌트나강을 한밤중에 건넜던 릭 스원슨의 개중 한마리가 죽었다.아이디타 로드협회는 동물보호단체의 대회거부 시위가 거세지자올해부터 출전한 개가 죽을 경우 그 책임을 선수에게 물어 탈락시키기로 했다.가장 개를 잘 다룬다는 강력한 우승후보 릭 스원슨은 어이없게도 이 조항 때문에 탈 락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두와 후미그룹의 거리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1위가 완주한 12일을 나흘이나 지난 16일에야 30위권의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그러나 완주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록이었다.하루 평균 5시간정도 수면을 취하면서 눈쌓 인 산악과 얼어붙은 강을 건너야 하는 대장정은 그야말로 인간승리의 장쾌한드라마다.피곤함을 못이긴 선수가 졸다 썰매를 놓쳐 설원에 버려지는 통에 구조대가 긴급출동해야만 했다.개들이 길이 아닌 덤불속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여자선수 린 다 조이는 얼굴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기도 했다.
12일 설원을 헤치고 거품을 문 개들이 나타났다.마지막 종점인 놈시(市)가 술렁이기 시작했다.제프 킹(알래스카)의 개썰매가 9일5시간43분만에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유일한 비(非)알래스카 출신인 더그 스윙리는 이보다 3시간뒤에 도 착했다.나머지 5위까지 모두 알래스카 선수들이 차지해 잃었던 자존심을 챙겼다.
글.사진=박준기<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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