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라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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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애(右)는 정만철(左)이 최고의 남편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유부남이었던 만철은 거짓말로 두 여자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라이어(liar)'는 제목처럼 '거짓말쟁이'가 주인공이다. 그것도 잠깐 외도를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딴 살림을 차리고 이중 생활을 한다.

택시 운전기사 정만철(주진모)은 부인 양명순(서영희)과 결혼한 지 3년째이지만 1년 전부터 사업가인 오정애(송선미)와 사실혼 관계를 맺고 있다. 새벽에 본가에 들렀다가 아침에 명순이 출근한 뒤에는 정애네 집으로 직행하는 식으로 요령 좋게 버텨왔다. 물론 명순과 정애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둘 다 만철을 성실한 운전기사 남편으로만 알고 지극 정성이다.

그러나 만철의 두집 살림 스케줄이 우연찮은 사고로 어긋나면서 만철은 거짓말을 시작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아, 같이 사는 백수 친구 노상구(공형진)를 소 치는 아저씨로 만들고, 없던 자식이 생기고, 사랑하는 아내를 남의 아내로 만든다.

제3자인 관객은 만철의 거짓말이 어떻게 끝맺을지 일종의 스릴을 느끼며 영화에 빠져들게 된다. 게다가 드라마 '때려'이후 연기에 물이 오른 주진모, 애드리브(즉흥 대사)의 달인이라는 공형진.손현주.임현식이 포진해 힘을 실어준다.

인터넷 소설을 각색한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전국 520만 관객을 모으며 화려한 데뷔식을 치렀던 김경형 감독은 이번엔 영국 극작가 레이 쿠니의 '런 포 유어 와이프(Run for Your Wife)'를 손질해 역시 코미디를 내놓았다. 첫 작품을 '대박'으로 끊은 그는 두번째 작품은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소포모(2년차) 증후군'을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1983년 영국에서 초연된 원작은 90년 초부터 한국에서도 공연돼 권해효.설경구.이문식 등이 이 작품을 거쳐갔다. 연극이 성공했다는 건 그만큼 원작이 튼튼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영화화하기에 부담스럽다는 말도 된다.

김감독은 연극 무대를 정직하게 스크린으로 옮기는 쪽을 택했다. "영화적인 스케일을 염두에 두고 지나치게 펼치는 것보다 연극의 성격을 그대로 살리는 편이 오히려 독특하리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건이 양명순의 집과 오정애의 아파트에서 일어난다.

'라이어'는 '동갑내기…'와 닮은 구석이 많다. 세련되게 꾸며진 세트에서 인물들이 속사포처럼 대사를 주고받는 점이 그렇다. 고등학생 방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젠 스타일'의 방에서 지훈(권상우)과 수완(김하늘)이 입담을 펼쳤던 '동갑내기…'처럼 '라이어'도 정애의 초현대식 아파트에 인물들이 모여 갈등을 폭발시킨다. 김감독은 "전작에서 시도해 봤던 스크루볼 코미디 요소를 더 확장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한때 유행처럼 휩쓸고 간 인터넷 소설과 10여년을 롱런한 정통 연극. 김감독은 그 선택의 차이에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리고 탄탄한 원작이라는 굳건한 대지 위에 발을 올려놓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연출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그의 태도가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려는 의지에서 나온 최선의 방법인지, 아니면 너무 영리한 계산의 결과인지를 평가하는 것은 물론 관객의 몫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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