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세계화 시대의 역사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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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화를 추진하는 정부정책이 역사교육을 크게 위축시킬 전망이다.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중.고등학교의 교과과정 개편에서는 「국사」가 폐지되게 돼있고,대학의 학부제 개편과정에서는 실용.도구과목에 밀려 인문학이 위축되는 가운 데 한국사를포함한 역사학관련 교과목 개설이 전반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역사교육의 위축은 중등교육에서 더욱 현저할 것으로 보인다.지난해 말 정부가 제시해 논란을 빚고 있는 7차교육과정안은 지금까지 중.고등학교에서 독립필수과목이었던 「국사」를 없애 「실과」로 대체하고 인문영역에 속한 역사관련 과목은 고 등학교 2,3년 심화교육단계에서 학생의 선택에 맡긴다고 한다.그러나 이같은 교육과정 아래선 단계별 학습은 물론 역사인식의 심화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시안에 포함된 국사나 유럽사.미국사.중국사 등과 같은 과목의 경우 해당과목을 제대 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나 수업공간의 확보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학생들의 선택도 극히 제한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학년에서 사회과에 통합된 국사나 세계사는 또 누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결국 이 안은 자치단체나 학생들의 자율적 선택을확대한다는 미명아래 역사교육.민족사교육을 축소.포기한다는 혐의를 면키 어려운 것이고 개혁이 아니라 시대에 역 행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시대에 살고 있다.이 세계화가 우리 민족의 문화.역사에 대한 정체성의 확립에 기초할 때 달성될 수있다는 것은 상식이다.자기 문화전통에 대한 자신감과 세계문화에대한 균형있는 인식위에 세워진 개성있는 현대문화 가 바로 세계문화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물건을 만들어 내다파는 기업인들도 우리의 독창적인 냄새와 색깔을 지닌 상품이 경쟁력이 있음을 말하고,다른 나라의 풍습과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직원들을 해외에 보내 연수시키는 것이 현실 이다.
그동안 앞만 보고 양적 경제성장을 위해 달려온 우리 사회는 이제 우리 사회를 세계적인 수준에 올려야 하며 그러기 위해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생각하고 민족의 앞날을 구체적으로 걱정해야할 시점에 도달해 있다.지금이야말로 기술■.경제 적 관점에서만사물을 바라보는 편향적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여기에는 인문학적 인식,사회를 보다 총체적이고 긴 안목으로 바라볼줄 아는역사적 인식이 절실히 요구된다.지구에서 오직 인류만이 과거를 돌이켜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준 비하는 지혜를 가졌기에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지 않았는가.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교육내용을 적절히 보완하고 바꿔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한때 「국사」가 「국책과목」으로 지정돼 정권의 정당성을 치장하는 도구로 이용된 적이 있었다.역사가 갖는국민통합적인 기능으로 인해 집권자들이 역사와 역 사교육을 이용하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던 것은 근대 이래 모든 국가에서 나타났던 공통된 현상이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 모든 나라에서 자국사나 역사교육을 방기한 예는 없었다.그리고 그 교육내용은 사회의 발전과 함께 보다 객관 적이고 풍부한 것으로 변해왔다. 우리는 지난날 경험을 살려 보다 나은 역사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그 틀과 내용을 바꾸고 채우는데 힘을 쏟아야 할것이다.과거의 「국정」이란 틀을 벗겨 교사와 학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고 「세계사」와 「국사」가 대 화하고「남」과 「북」이 어깨를 걸고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국경이 곧 없어질 듯 자본과 상품의 공세가 지속되지만 국제화.세계화의 구호속에 강대국들은 부쩍 자국중심의 역사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지금은 세계화를 강조하면서 역사교육을 축소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민족사교육,균형잡힌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할 때다.통일을 앞당기고 세계무대에 당당히 나아가기 위한 지름길이바로 여기에 있다.
김인걸 서울대교수.한국역사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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