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본 4·15] 1. "돈 선거는 막았지만 유세기회 줄어 아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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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이 끝났다. 선거.공천제도 등 선거환경에 혁신적 변화가 일어났다.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었다. 지난 선거전을 되돌아 보면서 앞으로 고쳐야 할 게 무엇인지 짚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새로운 제도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15일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대선 당시 SK에서 100억원을 받았다고 대검 중수부가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후 여론의 비난에 견디다 못한 당시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11월 3일 지구당 폐지 등을 담은 5대 정치개혁안을 발표했다. 먼저 정치개혁안을 내놨던 여권은 한나라당의 결정을 환영했다.

금품을 받을 경우 과태료 50배 부과, 정당.합동연설회 폐지로 대표되는 새 선거법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그 위력은 컸다. 2000년 16대 총선 선거운동 기간 중 181건이었던 금품.음식물 제공 위반 건수는 이번 17대 총선에서 4분의 1정도인 51건으로 줄었다.

특히 새 선거법은 선거운동의 개념을 180도로 뒤바꿔 놓았다. 유권자가 후보를 보러 몰려드는 선거의 시대는 갔고, 후보가 유권자를 찾아다니는 선거로 변모했다.

하지만 유권자와의 만남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법 규정들이 낳은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이미 얼굴이 알려져 있는 현역 의원과 달리 정치 신인들은 자기를 알릴 기회가 적어 발을 동동 굴렀다.

충남 보령-서천에서 무소속으로 뛰다가 한나라당에 입당한 김태흠 후보는 "나를 알릴 방법이 너무 없었다"면서 "여론조사 지지율 5%가 안 되는 무소속 후보는 방송토론회의 출연 기회조차 박탈당했다"고 토로했다.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처럼 넓은 지역구를 가진 후보들은 유권자를 찾아 들로, 산으로 헤매야 했다. 그러다 보니 피에로 차림이나 삭발 등의 튀고보자식 이벤트 선거가 난무했다.

유권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4일 경남 함양의 朴모(79)할머니는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 데다 합동연설회도 없어져 무엇을 보고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5일 내한한 필리핀 아시아자유민주협의회 존 코로넬 사무총장은 "돈 선거를 막은 한국이 놀랍다"면서도 "돈 선거 때문에 유세를 규제하는 것은 아기를 목욕물과 함께 버리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총선 파수꾼격인 선관위 측도 문제점을 인정했다. 중앙선관위 김호열 선거관리실장은 "돈 선거를 막는 데 초점을 두다 보니 선거운동이 너무 제한된 게 사실"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돈을 막다 보니 입까지 막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선관위는 방송토론의 의무화, 인쇄물 배포 확대 등의 개선안을 준비하고 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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