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나에게 오라-60년대 풍속화 맛깔나게 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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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소리 소문없이 은근히 잘 만든 국산영화 한 편이 23일 선보인다.김영빈감독의 『나에게 오라』가 그것.송기원의 원작소설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를 각색한 이 영화의 매력은 욕심내지않고 자연스럽게 이끌어간 연출이 편안하게 관객을 감싼다는 점.
그래서 광고 카피 같은 얄팍한 감각이나 실패한 예술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어깨의 힘」이 주는 불쾌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성장드라마의 형식을 취한다.사생아로 태어난춘근(박상민)과 윤호(김정현)가 서로 육친적 우정을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삶에 눈뜬다는 얘기다.이 줄기에 곁가지로 로맨스와 액션이 삽입된다.
형무소에서 2년을 살다 온 춘근은 역전 술집 작부 옥희(윤수진)와 걸쭉한 관계를 맺고,읍내의 소문난 수재였다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방황하는 윤호는 섬세한 소녀 연희(지종은)와 사랑에빠진다. 이처럼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이 공존한다.
한마디로 장르를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 이질적 요소들이 잘 버무려 놓은 비빔밥처럼 맛깔나게 섞여있는 점이 매력이다.감독은 60년대 시골장터의 갖가지 일상적 삽화들을 모아 그 시대의 풍속화를 성공적으로 그려 놓는다. 그 그림은 진창처럼 질퍽한 질감이다.그러나 따뜻하다.
춘근과 주변 불량배들의 대사는 원색적인 욕이 마침표처럼 붙어 있지만 추하다거나 폭력적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천방지축의 행동에 대해 어머니와 같은 시선으로 따스한 징벌을 가하기 때문일까.오히려 웃음을 자아낸다.마음으로 읽어낸 한국적 정서의 원형질이 느껴지는 영화다.
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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