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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좀 시끄러울 것" 돌아온 박계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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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서울 송파을 지역구에서 당선된 박계동 전 의원이 16일 석촌호수 인근에서 당선인사를 하며 유권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재야 운동가, 국회의원, 택시기사, 방송프로 진행자로 변신을 거듭하던 박계동(朴啓東.52)씨가 8년 만에 국회로 돌아온다.

"제가 여의도 의사당에 입성하면 조금 시끄러울 겁니다. 국책 사업 비리를 집중 제기할 생각입니다."

1995년 초선 의원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의 4000억원 비자금 조성'을 폭로했던 그는 정부를 향한 '선전포고'로 말문을 열었다. 6월부터 시작되는 4년간의 임기 동안 '선의의 비리 폭로 의원' 이 되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재기의 정치인'으로 통한다. 그만큼 부침이 많았다. 고려대 정외과 재학 중이던 75년 전국학생연맹 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이래 여러 차례 구치소를 들락거렸다.

80년에는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으로 4년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80년대 대표적 재야단체인 민청련.전민련 등의 대변인을 거치면서 재야의 '입'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朴당선자는 92년 서울 강서갑에서 14대 의원에 첫 당선했다. 95년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40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폭로해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일약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시련이 시작됐다. 96년 15대 총선에서 '꼬마 민주당'으로 나와 국민회의 신기남 후보에게 3000여표 차로 석패했다. 낙선 후 노무현 대통령,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으로 당선된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과 함께 서울 강남에 '하로동선'이란 고깃집을 내는 등 낙선의 쓴잔을 달래기도 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는 선거법 위반 사건에 따른 피선거권 박탈로 출마조차 못했다.

정치 생명이 위기에 처한 2000년 6월 '금배지 출신의 택시기사'로 변신,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생활 정치'의 실현을 위해 택시운전을 결심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법규를 지켜가며 한달간 꼬박 일해 손에 쥔 돈은 80만원이었지요."

10개월간의 택시기사 생활을 마감하고 2001년 6월부터 불교방송의 '박계동의 아침저널'이라는 시사프로그램을 4개월간 맡았다. 이어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정무특보를 지내면서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결국 이번에 서울 송파을 선거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금배지를 거머쥐었다.

朴당선자는 이번 총선에서 ▶서울공항 이전▶불법 비자금 환수 특별법 제정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고란 기자<neoran@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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