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젠 소형차가 우리를 먹여 살릴 돈줄 … 트럭은 희망 없어”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실망은 곧 희망으로 바뀌었다.

지난 24일 미국 포드자동차의 실적 발표일. “2분기에 8조7000억원의 손실을 봤다”는 끔찍한 고백이 나오자 애널리스트와 투자자 사이에서 탄식이 일었다. 이 회사의 분기 실적으론 사상 최악이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 전체를 놓고 볼 때 사상 24번째 큰 손실이기도 했다. 치솟은 가솔린 값이 트럭이 주 무기인 포드에 직격탄이 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숫자보다는 포드의 ‘변신 다짐’에 주목했다. 이날 포드는 2개의 트럭 공장을 승용차 공장으로 바꾸고 소형차 생산에 주력한다는 쇄신안을 내놓았다. 사실상 온몸을 성형수술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포드는 트럭으로 먹고살아 온 회사다. 매출의 3분의 2가 트럭과 관련됐다.

이날 누구보다 주목받은 인물이 바로 앨런 멀럴리(62·사진) 최고경영자다. 2년 전 포드의 사령탑을 맡은 뒤 3개 브랜드를 없애고 모자란 현금을 조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온 그는 이날 발표로 그동안 그려 온 포드의 청사진에 정점을 찍었다.

사실 그는 어릴 적 우주비행사를 꿈꿨고, 보잉사 직원으로 37년 잔뼈가 굵은 항공맨이다. 그러다 포드의 창업주 헨리 포드의 증손자인 빌 포드의 낙점을 받아 자동차업체 수장으로 변신했다. 빌 포드는 기울어 가는 회사를 살리려 심혈을 기울였으나 주주 압력에 못 이겨 2006년 가을 물러났다. 당시 포드의 조직문화는 봉건적인 것으로 유명했다. 간부들이 서로 고립된 채 승진과 당장의 숫자에만 집착했다. 회사 전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흔적은 없었다. 공장 가동률은 80%로 업계 최하위였고, 차 한 대를 만드는 데 제너럴모터스(GM)보다 한 시간이 더 걸릴 만큼 생산성도 처졌다. 이렇게 꼬인 회사의 수술을 집도할 적임자로 멀럴리가 꼽힌 것이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항공기 판매가 시원찮을 때 보잉787을 개발해 큰돈을 벌어 줬다. 9·11 테러 때는 3만 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멀럴리의 최대 강점은 덜 떨어진 생산체계를 뚝딱 매만져 환골탈태시키는 재주에 있다. 타고난 시스템 정비사인 셈이다. 원래 그가 도요타 팬이라는 사실도 재밌다. 보잉 시절에 그는 도요타 시스템을 적용해 재미를 봤다. 그가 타고 다니던 차도 도요타의 렉서스 LS430이었고, 아내는 렉서스 RX330을 운전했다.

그는 부임 뒤 조직문화부터 개선하려 했다. 목요일에 한번씩 간부들을 불러다 놓고 얘기하게 했다. 한번은 보고서에 어떤 직원이 2분기라고 쓰고, 다른 직원은 2Q라고 쓴 것을 보고 2Q로 통일토록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쩨쩨하다고 얕볼 게 아니다. 그만큼 한 팀, 한 목표, 조직 내 의사 통일을 강조했다.

자동차 컨설팅 회사인 카세사 샤피로 그룹의 존 카세사는 “멀럴리는 미국 자동차산업 변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며 “비결은 그가 외부 출신이기 때문이다. 포드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원래 디트로이트의 문화는 냉혹했다. 외부 출신은 여지없이 질근질근 씹어 내쳤다. 소비재회사의 내로라하는 마케팅 고수들이 자동차회사로 초빙돼 왔지만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멀럴리의 도전이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소형차 생산라인을 정비하려면 2010년은 돼야 한다. 유럽 공장에서 차를 들여오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애널리스트들은 포드가 그때까지 버틸 현금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고 있다. 앞으로 2~3년이 고비다. 미국의 공룡 자동차기업을 이끄는 멀럴리의 실험이 성공으로 기록될지 궁금하다.

김준술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