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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제야 심사에 착수한 외환은행 매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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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금융위원회가 영국계 은행인 HSBC의 외환은행 인수를 허용할지 여부에 대한 심사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조작과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 여부를 둘러싼 소송 등 ‘법적인 불확실성’이 해소되기 전까지는 승인절차를 보류하겠다던 입장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금융위는 여전히 “법적 불확실성 해소 여부를 보아가며 판단하겠다”는 조건을 붙였지만 “론스타와 HSBC 간의 국제적이고 민사적인 계약을 최대한 존중한다”고 밝힘으로써 사실상 인수 승인을 전제로 심사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금융위의 심사 착수 결정은 비록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법적인 논란을 빌미로 외환은행 매각을 장기간 지연시킴으로써 국내에서는 금융정책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고, 해외에서는 한국 정부의 외국인 투자유치 의지를 의심받아 온 게 사실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법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심사를 유보했지만 론스타는 이미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의 2심에서 혐의를 벗었고,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은 처음부터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라면 심사를 늦출 이유가 없었으나 이른바 ‘먹튀 논란’ 등 국내에 팽배한 반외자 정서를 의식해 덮어두었을 뿐이다. 사실 헐값 매각 논란 자체가 국제기준이나 국내 금융법상 하등 문제될 것이 없는데도 ‘국부 유출’이란 이른바 국민정서법에 편승해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지 않았던가.

이제 금융위가 심사 착수를 결심한 만큼 근거 없는 국민정서의 편견을 떨쳐내고 엄정한 자격심사에만 초점을 맞춰 심사를 진행하기 바란다. 다만 이전 정부 시절 외환은행 인수를 원하는 국내 은행에 대한 승인을 거부한 데 따른 역차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금융위는 이 부담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더 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