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국내 증권사가 이슬람율법 권위자 영입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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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투자증권은 25일 이슬람 율법 ‘샤리아(Shariah)’의 세계적인 권위자와 자문계약을 체결했다. 모하메드 다우드 바커 박사다. 세계 금융계의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불리는 이슬람 금융시장 공략을 위해서다. 바커 박사는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샤리아자문위원회 의장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이슬람 채권 발행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금융의 허브다.

이 회사 이도헌 상무는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펼치면서 이슬람권에 달러가 넘치고 있다”며 “전통적인 금융 영역은 글로벌 IB가 선점했지만 이슬람 금융권은 그들도 이제 막 시작이라 겨뤄 볼 만하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이 잇따라 이슬람 금융권 진출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융시장의 블루오션=이슬람 금융권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풍부한 오일달러 때문이다. 더욱이 이슬람권에선 돈을 싸게 조달할 수 있다. 미국·유럽보다 대출금리가 연 1.5%포인트 정도 낮다. 5년 이상의 장기 대출이 대부분인 것도 매력적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 IB들이 공략하지 않아 싼 값에 묻혀 있는 돈이 널렸다.

물론 이슬람권 자금이 모두 샤리아의 적용을 받는 건 아니다. 현재 세계 금융시장에서 활동 중인 중동의 국부펀드 가운데 샤리아의 적용을 받는 곳은 없다. 하지만 미국의 반 이슬람 정책 때문에 샤리아의 적용을 받는 자금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증권과 자문계약을 한 바커 박사는 “현재 전 세계 무슬림의 5%가 이슬람 금융을 이용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3조 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01년 5억 달러에 불과하던 이슬람 채권 발행 잔액은 지난해 말 600억 달러가 넘었다. 바커 박사는 “단순히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뿐 아니라 무슬림을 상대로 한 자산관리나 투자은행(IB) 업무 등 성장의 여지가 큰 분야가 널려 있다”고 설명했다.

◇‘수쿠크’로 첫걸음=이슬람 세계는 ‘돈놀이’를 율법으로 엄하게 금한다. 이자를 받을 수도 없다. 원금 보전 계약도 불가능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의 거래도 금지다. 그나마 새 금융상품을 내놓을 때는 율법 학자나 위원회로부터 샤리아에 어긋남이 없는지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이슬람 금융권에선 ‘수쿠크 ’라는 이슬람 채권을 주로 활용한다.

한국증권이 바커 박사와 자문계약을 한 것도 수쿠크 발행을 위해서다. 국내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이슬람 금융권에서 수쿠크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 윤성일 신사업추진본부장은 “이슬람 투자자가 한국 부동산이나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샤리아에 맞는 펀드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이슬람 금융 진출을 선언한 굿모닝신한증권도 말레이시아에 현지 사무소를 설치하고 팜오일 농장에 투자한 데 이어 조만간 수쿠크 발행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많다. 국내 금융사는 법에 열거한 상품만 팔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 리스트에 수쿠크가 없다. 이중과세도 문제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은행이 직접 집을 사서 임대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법인세 외에 집을 소유하는 데 따른 세금까지 부담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이슬람 금융 도입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정경민·최현철 기자

◇수쿠크(Sukuk)=이슬람 채권을 일컫는다. 율법에 따라 이자를 받지 않도록 설계됐다. 예컨대 주택담보대출도 은행이 집을 사서 임대하고, 원금과 이자는 수수료로 상환받는 형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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