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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여대야소] 총선 긴급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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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 15일 밤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송호근.김민전.김용호(왼쪽부터)교수가 4.15 총선의 결과와 향후 정국을 논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17대 총선 개표가 진행된 15일 밤 중앙일보 편집국에서는 정치.사회학 전공 교수 세명이 기자들과 함께 TV를 지켜보았다. 김용호.송호근.김민전 교수는 '열린우리당이 과연 과반을 차지할 것인가'를 주시하면서 분석과 전망을 주고받기에 바빴다. 세명 모두 표심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변화 욕구에 다시 한번 놀라는 표정이었다. 중앙일보는 좌담을 통해 '4.15 드라마'의 의미를 짚고 향후 정국과 한국 사회의 진로를 전망해 보았다.

◆참석자

- 김용호 교수(인하대 정외과.한국정당학회장)
- 송호근 교수(서울대 사회학과)
- 김민전 교수(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사회 : 김진 정치전문기자

▶사회=열린우리당이 창당한 지 6개월도 못돼 1당으로 부상했습니다. 어떤 구도가 전개되겠습니까.

▶김용호=국민은 양당구도를 선택했습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라는 두개의 대정당이죠. 여기에 민노당이라는 하나의 군소정당으로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열린우리당에 적절한 지지를 몰아주면서 한나라당을 견제세력으로 키워놓은 겁니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이 거대한 흐름에서 낙오되는 양상입니다.

▶송=겉으로 보면 양당이지만 기능적으로는 다당제 요소도 갖췄어요. 민노당은 몇석이냐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민주노총이 만든 민노당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상당한 의미와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열린우리당은 중도, 한나라당은 보수, 민노당은 좌, 이렇게 3당체제라고도 볼 수 있어요. 1인2표제가 이렇게 만들어 놓았어요.

▶김민전=산술적으로는 양당제지요. 하지만 정치사적으로는 성향이 비슷한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이 진보를 맡고 한나라당이 보수를 지키는 '양대 진영'구도가 형성됐어요.

▶사회=역시 이번 총선결과는 유권자들의 변화욕구가 반영된 것 아닙니까.

▶송=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 표출된 것이지요. 젊은 세대뿐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민주화 이전의 구질서나 민주화 이후에도 남아있던 카리스마적 정치와 전면적으로 단절하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김용호=정치문화가 급격히 바뀌고 있어요. 과거 유교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정치문화가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인 것으로 변하는 것이죠. 그 거센 바람에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등 기존 정당들이 약화하거나 무너지고 새로운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어요. 급조된 정당이 1당이 되는 것은 세계정치사에서도 유례가 적어요. 그만큼 새로운 정치에 대한 바람이 컸다고 할 수 있지요.

▶김민전=단연코 키워드는 변화입니다. 열린우리당뿐 아니라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약진했다는 것은 보수정치.특권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보여준 겁니다. 다수 국민은 또 참여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지속된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에도 염증을 느낀 것 같아요. 국민은 야당의 의회권력은 줄이고 정치권력을 대통령과 행정부로 몰아주자는 선택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어요.

▶사회=총선결과가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과 탄핵재판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김민전=총선결과와 상관없이 盧대통령 재신임문제는 사실상 헌법재판소에 넘어가 있는 거지요. 그런데 국민이 열린우리당에 상당한 지지를 보낸 것이기 때문에 盧대통령에게 유리합니다. 지지자들은 결국 '노무현 일병 구하기'를 무척 신경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송=맞습니다. 1당이 됐다는 자체가 재신임이나 탄핵재판에서 盧대통령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겁니다. 앞으로 열린우리당은 탄핵을 좌절시키는 데 우여곡절을 겪기는 하겠지만 종착점은 결국 열린우리당이 바라는 대로 될 겁니다.

▶김용호=16대 국회는 5월 29일 임기가 종료됩니다. 새로 구성되는 17대 국회에선 열린우리당이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게 될 확률이 큽니다. 국회 법사위원장은 盧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위원이 되는데 만약 그때까지 탄핵재판이 진행될 경우 열린우리당 출신 법사위원장이 탄핵소추를 계속할지 검토해야 할 문제입니다.

▶사회=앞으로 국회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열린우리당이 의원들을 영입해서 몸집을 키울까요, 아니면 민노당과 적극적인 정책연합에 나설까요.

▶송=두가지 다 아닐 겁니다. 盧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이나 열린우리당의 행동양식으로 보면 여권은 매사에 정면돌파로 나설 것 같아요. 개혁을 서두르면서 국민에 호소하는 '외곽때리기'로 기(氣)를 보충할 겁니다. 설사 열린우리당이 민노당에 손을 내밀어도 민노당이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민노당은 4년 후를 생각해 선명성 경쟁에 나서겠지요.

▶김민전=앞으로 개혁과제가 봇물 터지듯 나올 겁니다. 열린우리당은 민노당과 완전한 연합을 꾀하기보다는 사안별로 도움을 청할 것으로 보여요. 일종의 선별적 연합이지요.

▶사회=민노당의 원내 진입이 역시 뜨거운 화제입니다.

▶송=제가 사는 서울 강남에서도 적잖은 유권자가 민노당에 정당투표를 던진 것 같아요. 민노당이 중산층.서민층뿐 아니라 잘 사는 사람들에게서도 관심을 끈 것이지요. 이들은 민노당이 국회에 등장하면 기성 정치에 대한 일종의 '자극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아요. 아울러 기득권층은 민노당이 제도권에 들어오면 급진세력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김용호=민주노동당이 약진한 것은 기존 질서가 신뢰를 잃은 거예요. 이것은 정치문화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어요. 20, 30대들은 평소 자신들의 진보적 견해를 좌파로 몰아가는 데 대해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들은 민노당을 국회에 보냄으로써 민노당이 위험한 세력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김민전=민노당의 약진엔 사회조직과 정치조직의 연계라는 새로운 현상이 반영돼 있어요. 민노당에 대한 노조의 지지가 그 사례지요. 앞으로 우리 정치에서 조직화한 이익집단이 정당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볼 수 있지요.

▶송=정당명부제라는 제도적 장치도 민노당 약진에 크게 기여했지요. 사회의 발전단계로 보면 진보정당 출현이 늦은 감이 있어요. 이미 풍토는 마련돼 있었는데 열매를 맺게 한 것이 정당명부제라는 제도적 출구였지요.

▶사회=정통 야당세력의 맥을 이어오던 민주당, 한때 충청지역을 압도했던 자민련이 크게 후퇴했습니다.

▶김용호=선거전이 다당구도가 아니라 양파전으로 되면서 그 사이에서 거의 '압사' 당한 거지요. 그리고 스스로도 변화라는 시대적 흐름을 잡아챌 구체적 전략이나 정책을 내놓지 못했어요. 민주당은 정통 민주화세력, 평화세력을 자칭했는데 구체적으로 유권자를 설득하지 못했어요. 자민련은 좌경화를 우려한다 했지만 구체적으론 사건이나 쟁점을 부각시키지 못했지요. 그래도 항상 제3당이란 피신공간이 있는 법인데 이번에 그것을 민노당이라는 새로운 입주자가 차지했어요.

▶김민전=결국은 두 당이 모두 자기 혁신에 실패했기 때문이죠. 열린우리당은 정당개혁으로 호응을 받았고 한나라당은 막판에 대표를 바꾸고 천막당사로라도 피신했는데 민주당은 너무 늦었어요.

▶김용호=민주당은 마지막으로 추미애라는 카드를 썼지만 당 내분에서 힘을 많이 잃었어요. 3보1배로 좁히기에는 표심이 너무 먼 거리로 달아나 있었죠. 한나라당의 힘을 한 몸에 받은 박근혜 대표와 큰 차이죠. 그리고 朴대표가 인기를 선점하는 바람에 추미애 카드로 얻을 것이 별로 없었어요.

▶사회=각 세력을 이끌었던 스타들의 득점은 어떻습니까.

▶송=빈사상태에 몰리던 한나라당이 회생한 데는 박근혜 효과가 크게 기여했어요. 朴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었지만 박근혜 자체는 새로운 인물이에요. 정치적 경륜이 없다는 비판도 있는데 과거에 대통령 가족이고 영부인 역할이라는 정치적 공간에서 자라나 정치 경험도 있지요. 그리고 여성으로서 미디어 정치에 부합하는 면도 있어요.

▶김민전=국민은 권위주의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있으면서도 뭔가 품위있는 모습도 원하는 것 같아요. 朴대표는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에서 인기를 모은 측면이 있어요.

▶김용호=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여러 시련을 겪었어요. 그는 이를 중요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과거 정치인들이 엘리트주의에 빠져있었다면 鄭의장은 20, 30대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인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하지만 노인폄하 발언은 그의 정치인생에 평생 따라다닐 실수지요.

▶사회=이번 총선은 과거 선거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김용호=선거제도가 많이 변했지요. 예비후보등록제, 선거비용 공개제, 위반에 대한 엄격한 제재, 후보 선정과정에 도입된 외부인사 참여, 1인2표제 등등. 민노당이 제3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제도 덕분이지요.

▶송=무엇보다 정치인의 세대교체입니다. 구시대의 인물이 거의 청산되는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렇지만 정책 쟁점면에서는 흉작이에요. 탄핵만이 주로 있었고 선거기간 중 인물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없었어요.

정리=이상렬.우정훈 기자<jinji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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