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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메드베데프 ‘푸틴의 그늘’ 벗어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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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두 개의 권력, 러시아의 미래
유철종·박상남·채인택 지음
플래닛미디어, 284쪽, 1만3000원

구 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초반에는 “중국은 흥하고 러시아는 이로써 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았다. 현실주의적인 노선으로 국체를 그대로 잘 유지하는 중국, 급격히 정치체제 전환에 나선 러시아를 비교하는 시각이었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하고 받아들이는 문제는 그로부터 비켜 서 있는 사회주의 또는 저개발 국가들에게는 운명이 걸린 논쟁이다. 더구나 공산주의 종주국인 구 소련이 일거에 서방의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임으로써 생겨난 혼란의 상황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 거대한 나라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하기에 충분했다. ‘잘 나가는 중국’에 가려 러시아는 과거의 영화와 상관 없이 ‘잊어도 되는 나라’ 정도로 치부됐다면 과장일까.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요즘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러시아가 다시 일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막강한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국가자본주의라는 개발형 독재를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이 저간의 전망을 뒤집었다. 올해에는 푸틴보다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에 익숙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라는 42세의 젊은이가 순조로운 권력 승계 절차를 마치고 대통령으로 부상했다.

5월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메드베데프右가 전임 대통령이자 현 총리인 푸틴과 함께 크렘린 대궁전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메드베데프가 푸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책은 메드베데프라는 인물 분석에 치중하고 있다. 그의 성장 배경, 푸틴과의 인연, 록 음악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 등을 면밀한 자료 수집을 통해 낱낱이 분석한다. 그의 어깨는 미래의 러시아를 짊어지기에 충분할까라는 시각을 지니고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으나 총리 자리에 남아 새 대통령과 함께 권력의 한 축을 형성한 푸틴의 역할을 메드베데프와의 2인 동거 체제라는 틀 속에서 전망하고 있다. 조심스러운 결론이지만 책은 푸틴의 역할이 상당 부분에서 지속될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메드베데프가 개인적인 능력을 통해 종국에는 권력의 정점에 올라설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책은 메드베데프의 다양한 이력을 눈 여겨 보라고 권한다. 그는 법률 전문가에다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청와대 비서실장 격인 크렘린 행정실장을 거쳤다. 또 제1부총리로서 행정 경험을 쌓았으며, 세계 1위 가스회사인 러시아 ‘가스프롬’의 회장까지 역임했다. 최고 권부의 동향을 지켜 본 데다가 다양한 행정 경험, 실물 경제를 다루면서 쌓은 경영감각까지 갖춘 인물이라는 것.

책이 가져다 주는 별도의 재미도 있다. 과거 구 소련 시대의 권력 핵심부인 크렘린에서 벌어진 권력이행 과정을 함께 곁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진행 중인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권력교체 성공 여부를 과거의 러시아인들이 벌였던 권력 흥정의 역사에 빗대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는 거대한 잠재력에 걸맞게 1990년대의 부진을 털고 국제사회의 주역으로 힘차게 올라섰다. 경제개발에는 성공했으나 정치발전의 지체라는 병목에 막혀 불균형 성장을 지속하는 중국에 비해 많은 영역에서의 발전이 훨씬 빨라질 강대국이다. 이 참에 권력 정점에 올라선 메드베데프는 미래의 러시아에 대한 여러 전망에 답을 내놓을 가늠자다. 강대국의 힘이 늘 교차하는 한반도의 입장에서는 더욱 사려 깊게 관찰해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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