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박이문 비평서 동시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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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환경문제가 본격 이슈로 부상하기 시작한 50~60년대 환경논의는 조류 등 동물보호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인류의 생존자체를 거론하지 않고는 더이상 환경문제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생태계 파괴가 위험수위에 달했다.
수백만년에 이르는 인류역사에 비하면 극히 짧다고 할 수 있는30~40년만에 위기상황이 닥친 것이다.
생명본위의 사상을 줄기차게 주창해온 시인 김지하씨와 철학자 박이문 포항공대교수가 각각 물질문명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 저작을 내놓은 것은 지금 우리 삶의 방식을 반성적 차원에서되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하다.
솔출판사에서 펴낸 金씨의 『생명과 자치』와 민음사에서 나온 朴씨의『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은 다같이 우리 인간이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해 환경생태적 조화가 이뤄질 때 인류의 미래가 가능하다고 역설한다.정치학자 문순홍씨와 대 담 형식으로 꾸며진 5백50여쪽 분량의 『생명과 자치』는 다소 어렴풋하게 여겨지던 시인의 생명사상이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옥살이를 하던 70년대 중반 어느날,쇠창살 틈으로 날아 들어와 감방 안을 날던 민들레 꽃씨,쇠창살에 쌓인 흙먼지에도 싹을틔우던 개가죽나무라는 이름의 풀.
교도소에서 절망에 빠져 지내던 지은이에게는 그토록 끈질긴 생명력이 엄청난 가르침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비롯된 그의 생명사상은 그후 문명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일반 대중의 일상적인 생활개혁운동으로,시민주체의 정치형태인 지방자치로까지 확대.발전하기에 이른다.
시인은 15년동안 화두로 삼아온 생명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생물학자.물리학자 등 많은 전문가들의 관점은 부분적으로는 옳으나 전체적인 조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생명의 정의는 이모든 측면을 포함하되 그보다 더 깊고 넓고 큰 것이어야 한다.
지금은 과학적 발견에 힘입어 유기물과 무기물의 구분까지 허물어지고 있다.무기물도 입자들끼리 서로 통신하는 것으로 확인된 이상 복제능력이 없다 하더라도 영성적 생명을 확보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처럼 자연생명만이 아니라 무기물에도 우주적 조화속에서 생명이 숨쉼을 인정하고 그 생명의 흐름을 살려내 환경오염을 정화하는 것은 물론 경제질서와 문화.생활양식을 바꾸자는 것이 그의 생명운동의 요지다.
한편 박이문교수의 『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은 문명과 문화의 의미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근대이후 과학기술문명을 무비판적으로 정당화해온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다.
朴교수는 우선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인간의 물질적 번영이 결코 진보의 잣대일 수는 없다고 목청을 높인다.진보의 새로운 잣대로 朴교수가 내놓은 기준이 바로 정신.도덕적 잣대다.애덤 스미스나 제레미 벤담보다 명예.자존심.충성.희생.봉 사.존엄성 등의 가치관에 중심을 둔 토크빌의 사상이 더욱 높이 평가받아야한다는 주장이다.
朴교수는 이 책에서 지구촌시대 인류의 문명을 전(前)과학기술문명시대와 과학기술문명시대로 나눈다.
그는 현대가 속하는 과학기술문명시대 제반 문제의 병인(病因)을 물질주의적 가치와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으로 진단하고 새로운문명의 모델로 「포스트 과학기술문명」을 제시한다.
朴교수의 포스트 과학기술문명은 자연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인식,그리고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기술문명을 반성적으로 재평가하고 그것의 의미와 기능을 보다 거시적 시각에서 이해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거시적 시각이란 바로 생태학적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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