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같은 성격의 ‘가출’을 감행한 주부들이 자신의 경험담을 잇달아 책으로 엮어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본분에 밀려 억눌러 왔던 주부의 휴식 욕구. 이를 충족시킨 주부들이 내놓은 신선한 콘텐트다. “주부에게 가출을 허하라”란 목소리가 출판가에서부터 터져나오는 걸까.
인터넷 관련 재택사업을 하고 있는 신현주(37)씨는 최근 『롤리와 까딸리나의 멕시코 여행』(나무도시)를 펴냈다. 지난해 9월 멕시코로 결혼 10주년 기념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다. 동반자는 남편이 아닌 17년 지기 단짝친구였다. 남편은 신씨의 여행기간 동안 흔쾌히 한국에 남아 네 살배기 딸을 돌보며 직장에 다녔다. 남편이 아내에게 준 결혼 10주년 선물이 20일 동안의 ‘자유’였던 것이다. 신씨는 “결혼 10년차 주부에게 이보다 근사한 선물이 있겠느냐”고 자랑스러워했다.
여행을 다녀온 신씨는 “숨통이 트였다”고 말했다. “완전한 자유, 완전한 휴가를 만끽했다”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가는 휴가는 주부에게 휴가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신씨는 호시탐탐 ‘집감옥’을 벗어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한다. 출산 이후 시작된 재택근무. 그 기간이 3년을 넘어선 때였다.
처음부터 여행기를 책으로 낼 계획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식을 듣고 부러워하고 궁금해 하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서 뒤늦게 집필작업에 들어갔다. 신씨는 “책으로 엮어질 줄 알았더라면 좀 더 꼼꼼히 보고 오는 거데…”라며 아쉬움도 드러냈다.
『안식월』(황소자리)의 저자인 김수영(41·프리랜서 작가)씨 역시 가족을 떼어놓고 ‘나홀로 여행’을 떠났다.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에게 초등 1학년, 3학년인 두 딸의 뒷바라지를 맡긴 채 필리핀의 오지 뚜게가라오와 라굼으로 향한 것이다. 남은 가족들은 생각보다 잘 지냈다. 김씨는 “주부들이 집을 떠나지 못하는 건 내가 없으면 엉망이 돼버릴 것이란 염려 때문이지만, 별 문제 없다”고 말했다. 음식이라곤 밥과 계란 프라이밖에 못했던 남편도 아이들을 잘 거둬 먹였다. 외식도 하고, 반찬도 사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그동안 김씨는 온전히 쉬면서 생기를 찾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배짱이 생겼다”는 게 여행을 다녀온 뒤 느낀 김씨의 변화다.
독자 반응도 긍정적이다. 7월 첫 주 발간된 『안식월』은 그동안 초판 3000부가 거의 소진됐다. 출판사 측은 “관광지가 아닌 곳을 다룬 여행서 치곤 기대 이상 팔린 것”이라고 평했다.
이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