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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시험관 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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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싱글맘 허수경씨는 최근 낸 『빛나라, 세상이 어두울수록』이란 책에서 지난해 딸을 얻게 된 전후 사정을 털어놓았다. 허씨는 두 번의 자궁외 임신으로 양쪽 난관을 떼냈고 자연 임신이 불가능하게 됐다. 혼자 살지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어머니라는 이름을 갖고 싶어 아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일부러 자녀를 안 갖는 부부도 있지만 원하는 아기를 갖지 못해 애태우는 부부도 많다. 25일은 1978년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인 영국의 루이스 조이 브라운이 태어난 지 30년 되는 날이다. 브라운은 2004년 결혼해 지난해 1월 자연 출산으로 아들을 얻었다.

지난 30년간 세계적으로 체외수정 같은 보조 생식기술의 도움을 받아 태어난 아기가 300만 명을 넘어섰고 예상치 못한 일도 벌어졌다. 2002년 영국에서는 백인 부부의 시험관 수정 때 의료진이 흑인의 정자를 잘못 넣는 바람에 흑인 쌍둥이가 태어났다. 생물학적 아버지인 흑인 남성과 법적 다툼까지 벌어졌지만 백인 부부는 쌍둥이를 ‘입양’해 기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3년 이혼한 부부가 냉동 보관 중인 체외수정란의 소유권을 놓고 몇 년째 소송을 벌이고 있다. 아내는 수정란으로 아이를 갖길 원했지만, 남편은 수정란을 없애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2005년 11월 한국에서는 20대 여성이 카드 빚에 시달리다 자신의 난자를 불법 매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에서는 2006년 10월 할머니가 손자를 대리 출산한 사례가 있었다. 딸과 사위의 수정란을 자신의 자궁에 이식한 것이다. 이 아이는 할머니의 아기로 출생신고된 뒤 딸 부부가 양자로 입양했다. 2006년 말 호주 멜버른에서는 냉동 정자와 냉동 난자를 수정시켜 만든 배아가 다시 냉동됐고, 어머니 자궁을 거쳐 아기로 태어난 경우도 있었다.

올 2월 영국 뉴캐슬 대학 연구팀은 2명의 여성과 1명의 남성 유전자를 가진 인간 배아를 만들어냈다. 먼저 남성의 정자와 미토콘드리아 결함을 가진 여성의 난자로 만든 배아에서 핵을 빼냈다. 미토콘드리아 결함이 없는 다른 여성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뒤 배아에서 꺼냈던 핵을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지난달 말 영국에서는 한 여성이 유방암 유전인자가 없는 배아를 골라 임신했다. 불임 여성이 아닌데도 체외수정을 한 것이다. 남편의 할머니·어머니·누나·여동생 모두 유방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남편과 11개의 배아를 만들고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방암 유전인자가 없는 배아를 골라냈다.

환경호르몬으로 생식이 위협받는 요즘 시험관 아기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을 섞은 혼합 배아까지 허용하는 상황이 걱정을 낳는 것 또한 사실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