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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과 ‘님은 먼 곳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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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렴풋하게 기억이 났다. 1960년대 후반,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다. 어른들로부터 “녀석, 노래 잘 부르네”라는 칭찬을 받았다. 꼬마는 목청을 돋웠다.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조국의 이름으로 님들은 뽑혔으니 그 이름 맹호부대 맹호부대 용사들아….” (‘맹호들은 간다’)

월드비전 한비야 긴급구호팀장도 유사한 경험을 한 모양이다. “어렸을 때 즐겨 부르던 파월 맹호부대 군가를 아직도 틀리지 않고 끝까지 부를 수 있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그렇게 40여 년이 흘렀다. 2008년, 우리는 과거를 보다 객관화할 위치에 있다. 베트남전 참전이 자유통일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역사를 보는 눈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할리우드 협공에 오그라들었던 충무로가 최근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든 생각이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과 ‘님은 먼 곳에서’가 계기가 됐다.

일단 ‘놈놈놈’은 개봉 1주 만에 관객 300만 명에 육박했고, 24일 개봉하는 ‘님은 먼 곳에’에 대한 기대치도 높다. 각각 김지운·이준익이라는 흥행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것 외에도 두 작품은 고난의 한국 현대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닮았다. ‘놈놈놈’은 일제강점기 만주벌판을, ‘님은 먼 곳에’는 한국군이 피를 흘렸던 베트남전을 소재로 했다.

두 영화의 무대는 한반도를 벗어난다. 한국 영화의 시선이 그만큼 넓어진 셈이다. 시각적 판타지가 중요한 상업영화의 전략상 웬만한 해외 로케를 감당할 수 있는 충무로의 성장을 엿볼 수 있다. 반면 역사에 대한 두 작품의 접근방식은 대조적이다. 거의 대척점에 서 있다.

우선 ‘놈놈놈’은 탈(脫)역사적이다. 정우성·이병헌·송강호, 톱스타가 연기하는 ‘웃기는 놈’ 셋은 식민지·독립군 등 당대 핫 이슈에서 매우 자유롭다. 단지 보물지도 쟁탈전을 벌인다.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도 종종 노출되지만 전체 톤은 ‘폼생폼사’다. 멋진 총잡이들의 한바탕 액션이 키워드다. 우리가 역사를 ‘갖고 노는’ 단계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말이다

‘님은 먼 곳에’는 착(着)역사적이다. 소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한다. 제3자 시각에서 전쟁을 보려고 한다. 예컨대 한국군·미군·베트콩, 어느 한 편도 두둔하지 않는다. 베트남에 파병된 철부지 남편을 찾아 나선 시골아낙 순이를 통해 폭력의 남성과 평화의 여성을 대비시킨다. 『파우스트』식으로 해석하면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끌어올린다”다. 베트남전의 악몽을 돌아본 ‘하얀 전쟁’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두 영화는 시쳇말로 쿨하다. 총잡이·시골아낙 같은 아웃사이더를 주인공 삼아 항일투쟁·베트남전 같은 거대 사건을 일상으로 끌어내린다. ‘역사가 별거냐’고 묻는다. 나라 없는 백성에게는 돈이 보배고(‘놈놈놈’), 베트남전 참전은 돈 때문이었다는(‘님은 먼 곳에’) 자조적인, 그러나 현실적인 화두를 던진다. 과거 우리의 생채기를 액션 코미디로 찜쪄먹든(‘놈놈놈’), 아니면 정통 드라마로 성찰하든(‘님은 먼 곳에’) 예전의 울고 짜는 ‘전쟁 신파극’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충무로의 진일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아쉽다. 두 영화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나 이를 체현하는 개연성이 빈약하다.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마치 ‘어릿광대 잔치’를 보는 느낌이다. 두 감독의 초기작 ‘반칙왕’(김지운)과 ‘황산벌’(이준익)의 블랙유머가 그리울 정도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가슴 저린 슬픔 말이다. 세계 어느 곳보다 갈등이 많았던 한국 현대사. 그 아픔을 보편적 경험으로 승화시키는 건 충무로만의 숙제가 아닐 터다. 벌써 건국 60년이다.

박정호 문화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