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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집권당의 ‘말’ 그때그때 다르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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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나라당이 양치기 정당이 됐다. 늑대는 공공요금 인상이다. 지난 15일 정부는 “가스요금을 30~50%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이 들끓었다. 당장 민주당이 비판하고 나섰다. “지금 국민들은 물가 대란, 건강 대란, 외교 분란의 ‘삼란 시대’를 맞아 심란하다”고 꼬집었다.

한나라당도 동조했다. 발표 사흘 뒤인 18일 한나라당은 ‘인상 불가’ 방침을 공개적으로 내세웠다. “모든 물가가 경쟁하듯 치솟고 있는데 공공요금이라도 자제해야 한다”는 대변인 논평이 나왔다.

정책위의장단도 정부의 가스요금 인상 방침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다시 사흘이 지난 21일 당론이 바뀌었다. 슬그머니 인상 불가피론을 들고 나왔다. “원가 상승 요인이 누적돼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큰 폭으로 조정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 주말까지 가스·전기 요금의 인상 폭과 시기를 확정하겠다고 했다. 결국 18일의 호언장담은 거짓말이 된 셈이다.

가스·전기 요금의 인상 요인은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다. 올 1월 87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6월에 128달러까지 치솟았다. 연말까지 연초의 두 배 가까이 오르리란 전망이 제기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안 올리겠다고 선심을 쓰다 끝내 백기를 들고 만 것이다. 그뿐 아니다. 유가가 급등하자 정부·여당은 추가경정예산 편성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유류세 인상분을 서민에게 돌려주겠다며 10조5000억원 규모의 지원책도 내놨다. 정부 출범 초 “추경이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없다”고 반대하던 한나라당 모습이 어느새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런데 이들 정책이 시행되기도 전에 다시 요금 인상 방침으로 돌아서고 말았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외부 변수에 따른 불가피성을 감안할 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말 국민을 화나게 만든 건 요금 인상보다 여당의 말 바꾸기다. 필요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집권당에게 무슨 믿음을 느낄 수 있겠느냔 말이다. 양치기 소년이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그를 외면했다. 한나라당이 계속 이렇게 조변석개하는 모습을 보일 때 국민이 언제까지 양치기 정당에 신뢰를 보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권호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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