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대중문화현장>러시아 극장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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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극장은 놀 것이 별로 없는 러시아사람들에게 꽤나 격조높은 예술무대로 간주된다.잘 차려 입고 연인과 팔짱을 끼고 3시간여에걸쳐 발레나 오페라를 관람한다는 사실 자체가 「꽤 고상한 문화행사」로 여겨지는 것이다.때문에 한국에 비해 극 장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러시아 전역에는 15개의 오페라.발레 종합극장과 45개의 음악극장이 있다.중심지는 역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다.간혹 몇몇 지방에 역사깊은 극장이 있지만 고(高)수준의 예술무대라고 보기는 힘들다.러 시아전역에 걸쳐 극장가 산책을 하라고 하면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을 제외할 때 대략 6개극장을 꼽는다.
먼저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이다.
모스크바가 볼쇼이극장이라고 한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극장이 바로 마린스키극장이다.이 극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제국의 수도였던 시절부터 있어 왔기 때문에 모스크바 볼쇼이보다 더예술의 중심지로 오랫동안 역할을 했던 극장이다 .
1793년 돌로 건축됐다고 해서 「카멘느이」극장이라고 불리기도 했고 크다는 뜻으로 볼쇼이라고도 불렸다.
마린스키라는 이름으로는 1836년에 바뀌었으며 사회주의시절 키로프극장으로 개명됐고 옛소련붕괴 후 옛이름을 되찾았다.2천4백석 규모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는 여행객들이 꼭 찾는 곳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종합극장인 말리극장도 있다.1918년 건축됐으며 합창단과 악단들이 있다.
스타니슬라브스키 극장은 모스크바에서 볼쇼이극장 다음으로 쳐주는 극장이다.이 극장은 1919년 설립된 네미로비치 탄첸코 음악극장과 볼쇼이극장 산하의 오페라 스튜디오인 스타니슬라브스키 오페라스튜디오가 1941년 통합돼 역사가 시작됐다 .오페라및 발레극장인데 단원 1백명으로 볼쇼이보다 규모가 옹색하다.
그러나 볼쇼이극장이 내분에 시달리면서 예술성이 낮아졌을 때 『스타니슬라브스키가 볼쇼이보다 낫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기량을 갖추고 있다.
시베리아지역으로 가면 노보시비르스키극장이 있다.스탈린 시절인1945년 시베리아음악극장으로 시작했다.모두 2천석에 약1천석규모의 콘서트홀도 갖추고 있다.
볼가강변의 사라토프스키극장은 1875년 개인 오페라단을 위한극장으로 시작해 역사가 깊은 편이다.1천2백석 규모.
우랄지역의 도시인 페름의 페름극장도 꽤 쳐주는 편이다.이 극장은 1878년 유명한 사업가 스트로가노프가 자신의 노예로 구성된 개인 오페라.발레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랄같은 외딴 지역에 있는 페름극장이 이름이 나게 된 이유는2차세계대전 당시 키로프극장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이 기간중에 만들어진 페름발레학교는 아직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들 종합극장이 수준높은 예술향을 간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대개의 극장은 기본 레퍼토리 위주로 운영된다.
발레의 경우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지젤』『로미오와줄리엣』『해적』『돈키호테』 등이 돌아가며 공연된다.
새로운 작품은 여러 이유로 무대에 오르기가 꽤나 어렵다.
볼쇼이만 해도 몇년만에 처음으로 지난해 『돈키호테』가 무대에올려졌을 정도다.현대작품은 『스파르타쿠스』나 쇼스타코비치의 『황금의 시대』등이 있는데 자주 공연되는 편은 아니다.
오페라의 경우 외국작품으로는 『세빌리아의 이발사』나 토스카의오페라등이 자주 공연되며 러시아 오페라로는 『에프게니 오네긴』『이올란타』『마담 피크』등이 공연된다.
작품이 같다고는 해도 감독에 따라 해석을 달리해 극장마다 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같은 작품이 비극으로도,해피엔딩으로도 끝날 수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비슷한 작품들이 공연되는 데는 사회주의 70년의 영향이 크다.상부의 지시에 따라 공연하던 성향이 극장가를 지배해 그게 그것인 패턴이 생겨버린 것이다.
예술성이 덜하다 해도 공연시즌에 극장은 항상 꽉꽉 찬다.관객들은 가장 좋은 자리인 1층 파르테르와 무대를 중심으로 좌우로둥글게 원을 그리듯 몇개의 층에 배치된 10석규모의 작은 방(야루스)에서 관람한다.
내부는 제국주의 시절 황실에서 사용됐던 금색문양들을 사용하고있어 어두운 조명에서 보는 내부의 모습은 꽤나 이국적이다.
모스크바=안성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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