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돈<豚>으로 돈 벌기 치열한 눈치작전…문의전화만 빗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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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1일 삼성선물 이상훈 대리의 관심사는 온통 돼지고기 값에 쏠려 있었다. 이날 돈육선물 시장이 개장했기 때문이다. 10시15분 개장하자마자 첫 계약이 성사됐다. 3950원. 돼지고기 선물의 기준인 돈육대표가격(3858원)보다는 92원 비싸다. 보통 시장에서 선물은 현물에 비해 비싸기 마련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반영해서다. 그러나 92원 차이는 좀 지나치다. 시장이 불안하다는 증거다.

3시15분. 마지막 계약은 3935원으로 낮아졌다. 선물과 현물의 가격 차이도 47원으로 줄었다. 이 대리는 “돈육대표가격과 선물 가격이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며 “일단은 성공적으로 거래를 마친 셈”이라고 말했다.

돈육선물 시장 개장 첫날, 거래는 한산했지만 눈치 작전은 치열했다. NH선물 김인수 팀장은 “개장시간 내내 문의전화가 많았다”며 “다만 계좌를 트고 거래에 나선 투자가는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돼지 사육 농가의 참여는 적었다. 이날 개인의 거래량은 92계약으로 전체의 36.8%를 차지했다.

◇선물회사 물량이 대부분=돼지고기 가격은 주식시장보다도 널뛰기가 심하다. 지난해 코스피200지수의 변동성은 23.1%인 데 반해 돼지고기 가격의 변동성은 27.2%에 달했다.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돼지고기 가격을 안정시키고자 축산업계와 금융당국이 내놓은 합작품이 돈육선물 시장이다. 이 시장은 주식이나 금 선물처럼 장래의 돼지고기 가격을 사고파는 곳이다. 앞으로 돼지고기 값이 오를 것 같으면 선물을 사고, 떨어질 것 같으면 판다. 이를 활용하면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돼지 값이 널뛰기를 해도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일반투자가도 돼지고기 값을 잘 예측하면 선물 거래로 차익을 남길 수 있다.

첫날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다. 총 391건의 호가가 나와 125계약이 이루어졌다. 이는 하루 22만5000계약이 이뤄지는 코스피200지수에 비하면 초라한 실적이다. 하지만 1999년 4월 23일 상장한 금 선물의 첫날 실적인 104계약보다는 많았다.

다만 이날 이뤄진 계약의 대부분은 선물회사의 시장 조성 물량이었다. NH투자·삼성선물 등은 시장 거래가 활발하도록 적절하게 가격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총 계약의 45%가 이들 몫이었다. 아직까지 양돈농가나 육가공업체, 일반 투자자의 참여는 저조한 편이다. NH선물 김 팀장은 “선물업계에 있는 사람은 돈육이라는 상품을, 돈육 업계에 있는 사람은 선물 거래를 어색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뜨거운 관심=거래 초반 시장을 주도할 투자가는 중도매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의 도매 경험을 통해 돼지고기 가격 변동을 예측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가락동 축협중도인회 정강진 회장은 “돼지고기 가격 사이클은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며 “아직까지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를 활용하면 새로운 투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양돈 농가는 신중한 편이다. 삼성선물이 이날 성사시킨 55건의 계약 가운데 양돈 농가에서 나온 물량은 한 건도 없었다. 대한양돈협회도 나서 농가들을 대상으로 투자에 신중할 것을 권고한다. 협회 정현선 전무는 “사육에 전념해야 할 농가들이 선물 거래에만 신경을 쓰다가 오히려 전문가 집단에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증권선물거래소 신광선 차장은 “시장의 성패는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참여가 얼마냐 되느냐에 달렸다”며 “돼지고기 선물이 새로운 투자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고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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