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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아시아特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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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옛날 유럽인들에게 여행이란 큰일이자 고통이었다.영어에서 여행을 뜻하는 트래블의 어원(語源)인 라틴어 트레팔리움은 본래 몽둥이가 세개 달린 고문 도구다.같은 어원의 프랑스어 트라바유도노동.일이란 뜻이다.
여행이 고통에서 즐거움으로 바뀐 것은 교통수단의 발달 때문이다.19세기 기차가 발명돼 철도여행이 시작되면서 유럽인들은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특히 1883년 운행이 시작된 오리엔트특급은 「꿈의 열차」였다.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3천 ㎞를 달리는유럽 최초의 대륙횡단열차였다.
침대차.흡연실,그리고 여성용 객실을 따로 만들고 아르 누보풍(風)의 화려한 실내장식에 동양의 진귀한 양탄자,그리고 스페인제 쇠가죽과 마호가니 나무로 만든 안락의자를 갖췄다.열차내 레스토랑에선 최고급 요리가 제공됐다.오리엔트특급은 「레일 위의 궁전」이란 별칭으로 불리면서 왕족.귀족.부호(富豪)등 상류사회인사들로부터 사랑받았다.
오리엔트특급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또 그들로 인해 더유명해졌다.영국의 추리작가 애거사 크리스티는 오리엔트특급을 타본 경험을 토대로 1934년 『오리엔트특급 살인』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크리스티의 반대로 오랫동안 영화화(映 畵化)를 미뤄오다 74년 비로소 영화로 만들어졌다.
같은 영국 작가인 그레이엄 그린은 크리스티보다 2년 앞서 오리엔트특급을 소재로 한 소설 『스탐불 트레인』을 발표했다.소설발매 즉시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다.또 영국 스파이소설작가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 『러시아에서 애인과 함께』에도 오리엔트특급이 등장한다.
오리엔트특급은 1,2차세계대전때 일시 운행이 중지됐지만 되살아났다.그러나 항공기와 자동차의 발달로 승객이 줄어 적자를 계속하다 77년 운행을 마감했다.
지난번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는 부산과싱가포르를 잇는 범(汎)아시아철도 건설에 합의했다.완공후 기존유라시아철도에 연결돼 로테르담까지 이어진다.아시아특급의 등장이다.경제적 이득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미도 크 다.우리로선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는 한편 그동안 단절됐던 대륙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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