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47.性의 해방이냐,상업화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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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에로티시즘,성의 해방인가 성의 상업화인가.』 대중매체의 발달로 에로문화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국내외 영화 뿐만 아니라 연극,심지어 미술에서도 성적 노출은 자연스런 현상이 되고 있다.이처럼 예술적 형식을 통한 성적 표현이 자유롭게 되면서 「예술이냐 외설이냐」하는 논쟁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규범체제와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회문화」 교과서들에서도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야기된 중요한특징 중 하나로 이 주제가 거론되고 있다(지학사 「사회문화」교과서 2백15쪽 이하).그러나 이를 단순히 현대문화의 부정적 현상으로 보거나 「예술이냐 외설이냐」로 접근하는 것은 매우 식상할 뿐만 아니라 깊이있는 접근도 아니다.더욱 심도있게 접근하기 위해선 에로티시즘이 단순히 성의 예술적 표현에 그치는 것이아니라 기존의 모든 사회적 금기와 지배,그리고 현대 물신주의를비판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에로티시즘은 그리스 사랑의 신 「에로스」에서 유래한 말로 성행위 그 자체를 묘사하기보다 성을 통해 야기되는 「상상적 이미지」를 표현하는 모든 형식의 문화적 경향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리비도 이론 및 억압이론으로 최초로 사회학.철학적 으로 해석한프로이트 이후 이 개념은 사회적.정치적 「금기」를 넘어서기 위한 「위반」의 개념으로 자리잡는다.
대중문화와 권력,성과 정치학을 연결시켜,성이 권력과 자본 지배의 해체를 겨냥하는 도구이자 열쇠구멍이라는 것이다.이런 인식에 기대 성을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권력구조의 핵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권위주의.상업주의를 비판하기 위 해 도덕주의와 상업주의의 경계를 넘어 욕망의 근본적 실현이 가능한 운동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성이라는 「상상적 공간」의 상업화 가능성이다.
이 「상상적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소비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에로티시즘이 상상적 욕망의 자극-새로운 구매력 창출이라는 자본의 재생산 구도를 벗어나기가 쉽 지 않다.그럼으로써 기존의 모든 권력관계를 해체하고자 하는 에로티시즘의 의도와 상관없이 새로운 형태의 상업주의적 권력을 산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성격 때문에 권력과 물신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현대 에로티시즘이 인간에게 실질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구조적 억압을 외면한 채 인간의 상상적 공간까지도 물신주의에 투항시키는 결과를 빚는다는 비판을 받게 될 수 있다.그래서 오히려 물신주의에 오염된 대중의 무의식적 일상성을 의식적으로 전환하기 위한사회전체의 반성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시사적 쟁점을 철학적으로 주제화하는 것.단순히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넘어 에로티시즘에 대한 심화된 논의를 학습.소화할 필요가 있다.
김창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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