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식품의약전문기자의Food&Med] 마약성 진통제와 중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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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야말로 중독(intoxification)이 보편화된 사회다. 알코올·니코틴·카페인·설탕·쇼핑·일·인터넷·게임·도박·약물·마약 중독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중독은 자주 사용되는 용어지만 의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중독에 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중독자 자신의 의지에 의한 쾌락 추구”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의지만 있으면 언제라도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중독은 의지 박약의 증거라고 간주한다.

본인의 의도적인 행동(의지)이 중독의 단초가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나중엔 의지와는 무관해진다. 어떤 행동·탐닉이 강박적·자동적으로 바뀌어 중단·조절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 내성과 금단 증상도 중독의 강력한 증거다.

중독과 관련해 요즘 의료계에서 관심을 모으는 것은 마약의 ‘합법적’ 사용에 따른 중독이다. 암 환자와 만성 통증 환자에게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성 진통제는 최근 개봉된 영화 제목처럼 ‘놈·놈·놈’이다.

‘근대의 히포크라테스’로 통하는 토머스 시든햄(17세기 영국의 의사)은 “마약은 신이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선물한 것”이라고 예찬했다. 마약성 진통제를 장기 사용한 환자의 91%가 통증 호전 효과를 얻었다는 연구논문이 이를 뒷받침한다(『통증연구관리지』 2004년). 이 경우 마약성 진통제는 ‘좋은 놈’이다. 그러나 마약 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나쁜 놈’이다. 올해 『통증의학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24곳에서 2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마약성 진통제 투여 후의 중독 비율은 3.28%였다.

같은 마약이라도 탐닉을 위해 사용하면 단 한 번으로도 중독될 수 있지만 통증 치료 목적으로 쓰면 중독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한다. 전문가도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이상한 놈’이다.

선진국에선 마약성 진통제의 ‘좋은 놈’ 측면을 높이 사고 있다. 중독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적극 사용하자는 주의다.

암이나 만성 통증 환자가 겪는 고통이 ‘중독에 대한 우려’가 사치일 만큼 상상을 초월한다는 면에서 일리가 있다.

마약과 마약성 진통제를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의 인구당 의료용 모르핀 사용량이 호주의 152분의 1, 일본의 11분의 1에 불과한 것은 이런 사회적 편견의 결과일 수 있다.

아울러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에 따른 중독 예방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는 가능한 주사약이나 속효성 경구약보다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경구약·패치제를 사용하고, 충분한 양을 적절한 간격으로 복용하게 하는 등 마약성 진통제 사용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면 해결 가능하다. 환자에게 너무 휘둘려서도 안 된다.

국내 의료계에서도 이와 관련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통합된 마약성 진통제 처방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할 때다. 그래야 환자가 어느 병원, 어느 의사에게 치료받느냐에 상관없이 최선의 통증 관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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