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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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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06면

“독도 문제를 촛불시위 식으로 해결하려 들면 안 된다.”
독도 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 17일(현지시간) 일본문제 전문가인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현 동서대 석좌교수·사진)을 미국 뉴저지의 교외 주택가에서 만났다. 그는 미국 로펌에서 일하는 차남 가족을 만나려고 방미해 달포째 뉴욕에서 지내고 있다. 기자는 책을 벗삼아 세월을 낚고 있는 원로 외교관을 수소문 끝에 찾아냈다. 그의 경륜이 빚어낸 지혜가 필요했던 까닭이다. 그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밖에 나가지 않고 책을 읽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엔 미국 최초의 흑인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의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을 읽었단다.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 ‘정부 독도 해법’에 쓴소리

독도 문제를 묻자 그는 “국민들이 흥분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고 했다. “마치 내 주머니에 든 지갑을 누가 갑자기 ‘내 거’라고 시비 걸고 나서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해묵은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려면 냉정을 잃지 않는 여유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이번 독도 문제는 과거와 어떻게 다른가.
“일본 정부가 ‘독도는 자국 영토임을 국민에게 가르치겠다’며 직접 교과서 지도서를 만들었다는 점이 확연히 다르다. 과거엔 민간업자들이 만든 교과서를 검정 과정에서 묵인한 수준이었다. 검정하는 것과 직접 지도서를 제작한 것은 엄연히 다른 차원이다.”

-한·일 정상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맺기로 한 직후 이런 일이 터져 뒤통수를 맞았다는 얘기가 있다.
“다차원적으로 봐야 한다. 이번 일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겠다고 한 걸 뒤집으려 한 건 아니라고 본다. 실은 아베 신조 전 총리 때 소위 ‘주장하는 일본’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된 사안 중 하나였다. 이 프로그램 속에 들어 있던 독도 영유권 주장 방침이 시간이 흘러 지금 나왔다는 얘기다. 현재의 일본 정부가 왜 제지하지 못하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후쿠다 내각은 기반이 약해 그걸 억누를 지도력이 부족했을 수 있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바람직한가.
“외교적 해결 방식으로 사태를 처리해야 한다. 항의도 외교적 채널로 적절히 하는 게 좋다. 큰 틀에서 한·일 관계를 관리한다는 기조는 유지돼야 한다.”

-실효적 지배를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더 이상의 지배 강화는 불필요하다고 본다. 추가적 조치는 환경 문제만 야기시킬 수 있다. 전투경찰이 섬을 지키는 이상의 실효적 방안이 뭐가 있느냐. 자꾸 실효적 지배를 강화한다고 하면 일본인을 자극만 시킨다. 그럴 필요 없다.”

-독도 문제에 대한 과거 정부의 대응 방법은 어땠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조용한 대응을 선호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끔 강경 발언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한·일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시각은 같았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직접 국민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대응했다. 이때 일본에선 노 전 대통령의 국내 지지도가 낮으니까 반일 문제를 정권(政權) 부양책으로 삼는다고 했다. 이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다. 한·일 문제는 냉정하게 실리를 생각하면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번 일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일본에서는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차질을 빚기를 바라진 않을 것이다. 우리로서도 한·일 관계 전부가 그늘에 가려지는 건 좋지 않다. 두 나라 사이에서 협력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지 않으냐. 주춤하긴 하겠지만 양국 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밀어줘야 한다. 그 대신 국제법적 요건 등을 강화하면서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또 이번 문제가 너무 정치화되고 국민 정서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다고 우리의 독도 영유권이 훼손되진 않는다. 여유 있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 서울지국장이 ‘50년간 지배해 왔으면서 왜 흥분하느냐’고 한 발언도 일리 있는 얘기다.”

-국제법적 요건을 강화하려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밝히는 학문적 연구가 중요하다. 일본에선 역사적으로 독도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귀중한 연구들이 나왔다. 그러나 국내에선 미진한 감이 든다. 아울러 국제법 사회에서 한국의 지위를 강화하는 것도 절실하다. 이런 면에서 국제해양재판소·국제사법재판소 등 주요 국제기구에 한국인들이 진출한 점은 고무적이다.”

-독도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은.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결론짓자 하는데 이는 받아들일 수 없다. 남는 건 외교적 해결로 독도에 관한 한·일 간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독도는 한국 땅이구나’라고 일본 국민이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꾸준히 그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일본인의 인식이 바뀔까.
“어떤 활동가가 나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초등학생부터 온 국민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한다고 일본인들이 납득하겠는가. 이는 일본인들이 어떤 배경을 통해 자신들의 정부가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하게 됐는지 그 경위를 자세히 알게 되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다. 실제로 일본의 독도 침탈 당시 펼쳤던 무주지(無主地) 선점론이 근거 없다는 걸 밝힌 일본 학자들의 귀중한 연구가 적지 않다. 1877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고 밝힌 일본 내무성 문서가 있다. 또 일본 막부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이니 건너가면 안 된다’는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1987년 호리 가즈오(堀和生) 교토대 교수가 논문을 통해 밝혔다. 또 시마네대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 명예교수는 10년 이상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거짓임을 폭로해 왔다. 이 밖에도 많은 일본 학자가 독도는 한국 영토라는 역사적 증거들을 찾아냈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릴지 모르나 이런 양식 있는 학자들의 주장이 확산되면 일본인들의 의식이 바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일본 관료들의 반응은.
“듣기만 하고 가만히 있는다. 반론을 할 수가 없다. 자기들이 불리하니까 얘기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정부에서 이런 학자들을 돕는 건 어떤가.
“우리가 도우면 그들은 한국의 어용학자로 일본 사회에서 매도당할 수 있다.”



공로명(76) 전 장관은
주일 대사(1993~1994)를 지냈으며 외교부 내 일본 인맥을 뜻하는 ‘재팬스쿨’의 대부 같은 인물이다. 2003년 외국인으로는 처음 아사히아시아네트워크(AAN) 회장을 맡은 데 이어 현재 한·일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일본 정계와 지식인 사회에도 영향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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