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글로벌 리더십 새 판 짜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1호 32면

오늘의 글로벌 경제는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일본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이 또 한 번의 겉치레와 말잔치로 끝나면서 글로벌 리더십과 그 거버넌스(협치·協治)에 대한 개혁 논의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현재 글로벌 경제 리더십은 두 개의 궤도(two track)로 운용 중이다. G8 연례 정상회담이 첫째 궤도다. 선진 7개 부국 클럽인 G7에 러시아가 1998년 초청받으면서 8개국 리더십 포럼으로 발전했다. G8은 8개국만의 배타적 모임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위해 2005년부터 그때그때 토의 의제와 관련이 깊은 신흥 경제국들을 선별적으로 초청하고 있다.

또 하나의 궤도는 G20 금융포럼이다. 선진 7개국, 즉 G7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모임이 그 효시다. 러시아가 G8 멤버가 된 후에도 처음엔 이 금융포럼에 초청받지 못했다. 97~9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99년 G20이 탄생했다. G8에 유럽연합(EU) 대표와 호주가 추가되고 신흥 경제국 중에서 한국을 비롯해 아르헨티나·브라질·중국·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사우디아라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터키 등 10개국이 참여하는 거대 포럼이 만들어진 것이다.

투 트랙 메커니즘은 외견상 훌륭해 보이지만 문제는 기능이다. 글로벌 경제의 변화와 새 도전에 대한 대응에서 갈수록 무력하고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경제와 세계 금융시스템은 이미 G7의 통제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G8 리더십 포럼이나 G20 금융포럼은 G7 위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와 경제력 면에서 G7의 글로벌 대표성은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2050년 세계 인구 90억 명 가운데 80억 명은 ‘비서방(非西方)’ 인구로 오늘의 서방 선진국들은 ‘글로벌 소수’로 전락할 전망이다. 경제력은 현 추세가 계속될 경우 2025~30년 경제 4대국 가운데 3개(중국·인도·일본)가 아시아에서 나올 판이다.

옛 소련 붕괴 이후 한때 미국 주도의 단극화 세계 질서는 신생 글로벌 플레이어의 대거 등장으로 다극화로 치닫고, 국경을 넘는 비정부기구(NGO)에 힘이 실리면서 ‘무극화(無極化, non-polar)’로 향하는 추세다.

더구나 당장의 금융 및 무역 불균형과 에너지 기후변화, 핵 비확산, 전염병, 테러 방지 등 주요 글로벌 이슈들은 이해 관계국들의 폭넓은 참여와 대표성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효율적 대처와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산유국과 신흥 수출대국들의 보유 외환과 국부 펀드의 달러 홍수가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의 감질난 돈줄을 압도하는 세상이다.

현행 G8 체제를 확대하는 가장 손쉬운 방안이 소위 ‘G8+5’다. G8에 중국과 인도·브라질·멕시코·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을 참여시키는 방안이다. ‘G13’이 되면 세계 경제력의 80~90%,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망라된다는 계산이다. 2005년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의 제의로 이듬해 ‘G8+5 기후변화 협의체’가 발족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여론몰이에 나섰지만 이번 도야코 회의 발표문에는 이에 관한 어떤 언급도 없다. 내년 이탈리아 G8 정상회의에도 5개국이 계속 초청을 받았지만 ‘G13’의 사실상 공식화로 보기에는 너무 이르다. 미국은 G8 말고도 유용한 포럼이 많이 있다며 G8 확대를 장기적 과제로 돌리고 있고, 영국도 ‘G8+알파’ 식 초청의 제도화로 충분하다며 확대를 꺼린다. 중국을 견제하는 일본도 G8이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그룹이라며 참여 확대는 대화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플러스 5’에 한국이 빠져 있는 점이 서운하다.

G20 금융포럼을 G20 정상포럼으로 격상시키는 것이 논리적인 다음 단계라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회의의 효율성이 우려되지만 EU의 정책 수립 및 조정 능력을 보면 G20이라 해서 못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서방 세계의 열린 리더십이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의 ‘민주국가 대연맹’ 아이디어는 시대적 역행이다. 대서양주의에서 글로벌리즘으로, 일방주의에서 다자주의로, 힘보다는 설득과 포용에 의한 리더십이야말로 오늘의 세계가 갈구하는 글로벌 리더십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