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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애인을 꿈꾸는 남자 '신성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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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경북 영천 괴연동, 신성일 자택으로들어가는 길에는 드넓은 포도밭이 펼쳐져 있다. 포도밭을 따라 산길을 올라가면 나지막한 산등성이에 오롯이 서있는 한옥 한채가 눈에 들어온다. 신성일이 직접 지은 한옥집, 바로‘성일가(家)’였다.

취재_모은희 기자 사진_문덕관(studio lamp)

영천 한옥집 입구에 막 이르렀을 때 신성일은 반바지에 티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마당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의 이마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오늘 귀한 손님 오신다고 해서 어제부터 하루 종일 쓸고 닦았지. 이틀 전 막 도배가 끝났어요. 우리 집이 완공되고 처음 집 안에 들이는 손님이네요. 어서 들어갑시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신성일은 커피나 차 대신 물 한 잔을 내놓았다.

“우리 집 물맛은 꼭 보고 가야 해. 이거부터 마시고 시작하자고.”

마당 앞으로는 탁 트인 시야가 펼쳐지고 밑으로 개울이 흐르며, 뒤쪽으로는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는 곳. 산등성이 위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조그만 호수도 보인다. 굳이 풍수지리 를 언급하지 않아도 좋은 땅임이 분명했다.

우리나라 제일의 금강송으로 지어진 집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곳, 와이너리도 계획

“맞아요, 이곳이 명당자리예요. 한번은 풍수 지리 전문가가 공사 현장에 들렀었는데, 이 땅 이 재력, 재물, 장수를 부르는 곳이라고 합디다. 이 나이에 권력이나 재물이 무슨 소용이냐 했더니 그건 후대에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다른 건 몰라도 장수한다는 얘기는 기분 좋았어요. 건강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었어요.”

신성일의 집 자랑(?)이 계속 이어졌는데, 특히 집을 지을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바로 나무라고 했다.

“강원도 진부에 백림 제재소가 있어요. 그곳 사장이 저와 잘 아는 사이인데, 제가 한옥을 짓는다고 하니 최고급 금강송을 모두 주었죠. 그 나무를 삼척 도계에 있는 한국전통건축직 업학교에서 두 달 동안 다듬어서 가져온 거예요. 나무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다 놀랍니다. 이렇게 좋은 나무는 흔치 않거든요.”

신성일이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지난 해 10월부터다. 원래는 잡목이 우거져 있는 빈 땅이었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는지 우연히 그의 눈에 들어왔다.

“주위 사람들이 그래요. 땅 주인은 역시 따로 있다고. 원래 이 땅이 주변에 비해 3미터 정도 푹 꺼져 있었어요. 그래서 꺼진 땅을 돋우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죠. 제가 원래 한옥과 인연이 좀 깊습니다. 서울에서 처음으로 하숙 했던 동네가 바로 가회동이에요. 제가 그 당시 야심이 좀 있어서 한국에서 최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 하숙집을 얻었죠. 또 태어난 곳은 대구에 있는 인교동입니다. 당시 인교동은 고풍스런 한옥 마을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한옥에 살았으니 그 향수가 어디 가겠어요. 원래는 초가집이나 정자 하나 지어서 살아야지 했는 데 일이 조금 커진겁니다.”

그가 영천에 한옥을 지은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이곳이 워낙 포도밭으로 유명한 곳이라, 와이너리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 알고보니 그는 술 가운데 최고는 와인이라는 와인 예 찬론자였다.

“1973년 5월 베를린 영화제에 갔었을 때였어요. 신상옥 감독과 영화배우 김지미씨와 동행 했는데, 베를린에 있다가 파리로 넘어가 영화 촬영을 하기로 되어 있었죠. 거기서 처음으로 와인 맛을 본 거죠. 그때 우리나라에는 와인 이라는 게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파리에서 와인을 처음 먹어 봤는데, 정말 기가 막혔어요. 원래 술을 잘 못하는데 그 후로는 와인을 즐기게 되었죠. 와인 사업은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 집 이름이‘성일가’잖아요. 그래서 성일가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와인을 만들까 생각 중이에요. 여기 포도가 정말 좋습니다.” 처음 영천에 한옥을 짓겠다고 했을 때 부인 엄 앵란의 반대가 심했다. 꼭 짓고 싶으면 서울이 나 가까운 서울 근교에 마련하자고 했지만, 그 는 꼭 이곳에 짓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처음 이 집 지을 땐 엄 여사가 틀어져서 말도 안 했어요(웃음). 엄 여사는 팔당에 짓자고 했죠. 서울과 가까우니까. 하지만 여기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니까 당연히 여기에다 짓겠다고 했어요.”

부인 엄앵란은 언제 이곳으로 내려오냐고 물으 니, 뜻밖에도‘안내려온다’는 대답이돌아왔다. “엄 여사는 여기에 안 옵니다. 그 사람은 대구 에서 16년 동안 식당을 경영하며 고생했고, 특히 내가 감옥까지 갔다 왔으니(그는 의원 생활 중 뇌물 수수 혐의로 2년간 복역하다 지난해 특별 사면 되었다) 여기 오기 더더욱 싫을 거예요. 무엇보다 엄 여사는 결혼하고 지금까지 손에 물 한 번 묻혀 보지 않은 사람이에요. 결혼 직후 우리 집에는 일하는 사람만 여덟, 아홉이었어요. 아이 봐주는 사람, 요리 해 주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세탁해주는 사 람…. 지금도 집에 살림하는 아줌마가 따로 있어요.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여기 시골에서 새삼스럽게 살림하고 그럴 사람이 아니죠. 결혼정보회사 일로(엄앵란은 현재 결혼정 보회사‘닥스클럽’의 컨설턴트이다) 바쁘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 부부는 따로 떨어져 있어야 마음이 편해. 서로 안 맞아도 평생 사는 게 바로 우리 부부예요.” 결혼 초부터 영화 촬영이다, 해외 스케줄이다 해서 늘 집을 비웠다는 신성일. 그러다 보니 부부는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런 삶이 두 사람에게 어느덧 익숙해졌다. “또 우리는 부부지만 완전 딴 주머니야. 이번 에 집 지을 때도 엄 여사 주머니에서는 한 푼도 나오지 않았어요. 정말 요만치도 안 나왔지. 이 집 지을 때‘왜 쓸데없는데 돈을 쓰냐’는 그 사람 타박에‘당신 돈 안 쓸 테니 걱정 말라고 얘기했어요.”

지난 5월 8일엔 신성일의 생일을 맞아 한옥에서 잔치를 벌였는데 그날만큼은 엄앵란도 내려왔단다. 그는 영천 주민 1000명을 초대해 신고식 겸 생일 파티를 했다. 신성일은 부인과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 집엔 자기를 감시하는 스파이(?)가 한 명 있다고도 털어놓았다.

“조금 전에 들어오면서 일하고 있던 여인네 한 명, 봤죠? 이름이‘정말수’예요. 그 여인네 가 엄 여사 스파이예요.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엄 여사한테 그대로 보고하니까.”

감옥에 있을 때 그리웠던 한 가지,‘ 여자’
서로 안 맞아도 평생 사는 게 우리 부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신성일의‘바람기’로 흘러갔다. 신성일은 그동안 당대의 톱스타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고, 한시도 그를 놔두지 않 는 여자들 때문에 엄앵란이 촬영장에 도시락 싸들고 다녔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이에 대해 신성일은 자신이 바람둥이인 것처럼 소문이 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주변의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람을 피우는데 거기에 비하면 한마디로 억울하다는 것이다.

“신성일 마누라가 엄앵란이라는 건 세상이 다 알잖아요. 어쩌다 여자를 만나서 한참 얘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저 엄앵란씨 팬이에요’그러는 거야. 그럴 땐 정말 화가 나지요. 그러나 그건 여자들의 방어일 뿐이지, 진심은 아니에요. 제가 어떤 여자와 데이트하고 싶어도, 엄앵란이 무서우니까 시작도 하기 전에 여자들 스스로 지레 겁을 먹어요.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제가 여자와 함께 있는 것만 보면 사람들이 알아서 엄 여사에게 보고를 하죠. 전혀 우리 부부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인데도….”

신성일은 출감한 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엉덩이가 예쁜 여자만 보면 뛰어가서 뽀뽀해 주고 싶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당시 그의 얘기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신성일은 그건 그저 솔직한 답변이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인터뷰 당시 출감한 지 겨우 이틀이 지났을 때였어요. 감옥에 있을 때면 면회 온 사람들이 물어봐요. 뭐가 제일 그립냐고. 그러면 저는 스스럼없이‘여자’라고 대답했어요. 그곳에서 여자 구경을 정말 한 번도 못했으니까. 대신 감방 안에 스포츠신문에서 오린 여자 사진들을 붙여 놓았어요. 주로 샤라포바, 힝기스 같은 운동선수 사진들이었는데, 모두 에너지 넘치고 건강한 여자들 모습이었죠. 사실 교도소는 야한 사진들이 수없이 돌아다니는 곳이에요. 대한민국 최고 영화배우 신성일 체면에 그 런 사진들 붙여 놓을 수 없잖아요. 대신 사진 작가들이 찍은 건강하고 섹시한 운동선수들 사진을 붙여 놓았죠.” 그는 스스로‘매일 마음속으로는 애인이 있었으면, 바라는 남자’라고 했다. 가슴속으로는 사랑의 마음이 넘쳐나지만, 현실에서는 가정이 있고 아내가 있는 남자이기에 그 욕망을 억눌러야 할 때가 수도 없었다. “단순히 엄 여사 때문만은 아니에요. 한 가지 더 있어요. 대한민국 최고 영화배우라는 자존심 때문이지요. 최고 배우라는 사람이 결혼 후에 어설프게 바람이나 피우고, 그럴 순 없잖아요. 한 가지 예를 들게요. 저는 절대 공항 같은 데서도 시간이 남는다고 벤치에서 자거나 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혼자 여행을 갔다가 비행기를 놓친 적이 있었어요.

시간이 어중간해서 공항 호텔을 갔는데 세 시간 잠깐 눈 붙이는데 400달러를 달라고 하더라고요. 400달러면 웬만한 비행기 값이잖아요. 제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 돈을 주고 절대 거기서 안 잤을거예요. 하지만 대한민국 최고 배우가 체면 구겨지게 의자에서 잘 수는 없죠. 그런 자존심과 자부심 없이 어떻게 살겠어요. 저는 60년대 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스탕 스포츠카 를 타고 다녔던 사람입니다.”

앞으로 정치하지 않기로 엄앵란에게 맹세
운동으로 건강관리, 노년의 자유로운 삶

신성일의 한옥 지하는 샌드백이 매달려 있다. 그는 수감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운동 하나만 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면회 온 사람들에게 초췌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당당한 모습으로 출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감옥에 있을 때도 문신한 애들이 저한테‘형님’하면서 고개를 숙였어요. 저는 제 몸을 아주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어릴 적엔 수영을, 중학교 때는 평행봉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남산에 헬스클럽이 오픈했는데 그때가 71년도였어요. 제가 첫 멤버였죠.” 지금도아침마다 산에오르며 운동을 거르지않는다는 그. 마라톤 하프 코스 정도는 거뜬히 완주하는체력을 자랑한다. 요즘도샌드백으로몸을단련한다는그의 몸매는 여전히 근육질이다.

“제가 운동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기 위해서죠. 운동을 하면 살찔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잖아요. 둘째는 멋진 옷을 입기 위해서예요. 제가 워낙 옷을 좋아합니 다. 명품 옷도 많고 옷에도 관심이 많아요. 살이 찌면 그런 옷을 못 입잖아요. 제 사이즈가 딱 미디엄, 이탈리아 사이 즈로 미디엄이에요. 그 사이즈 옷이 딱 예뻐요. 운동을 계속 해야 그 사이즈가 나옵니다.”

그는 헤어스타일도 바꾸었다. 그 유명‘베토벤’스타일로, 그는 출감 바로 다음 날 미용실에서 파마부터 했다.

“복역 중에 백건우.윤정희 부부가 면회를 왔어요. 두 사람은 저와는 정말 막역한 사이예요. 저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그러고는『베토벤의 생애』라는 책을 주고 갔어요. 물론 악보나 이론 같은 건 그냥 지나쳤지만 베토벤 사진을 봤을 때는 눈길이 딱 멈췄어요. 머리 스타일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자유로워 보였죠. 그래서 엄 여사가 애용하는 미용실에서‘베토벤’스타일을 주문했어요. 저는 이 헤어스타일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예전 정치할 때는 젊어 보여야 한다고 해서 시간 날 때마다 염색을 했어요. 나한테는 정말 곤욕이 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고.”

그는 앞으로 정치는 하지 않기로 엄앵란 앞에서 맹세했다. 영화에도 출연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아들 강석현이 영화를 제작한다면 꼭 한 편만 출연할 생각이다.

“아들한테는 정말 미안한 점이 많아요. 요즘은 아들을 위해 얼마쯤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치도 영화도 안할 거지만, 만약 석현이가 자기 영화에 나와 달라고 하면, 그때만 딱 한번 출연할겁니다.”

영천 산자락에서 만난 신성일은 한껏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헤어스타일도 과감히 바꾸었고, 옷도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는 아파트에서는 절대 하지 못했던 일이라면서 오디오 볼륨을 마음껏 높였다. 꾸준한 운동 덕분에 그에게서는 에너지가 흘러넘쳤다. 그는 사진 촬영이 이어지자 근육을 보여주겠다며 셔츠를 훌러덩 벗고 민소매로 갈아입었다. 병원에 가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신체 나이가 50대로 나왔다며 이노년의 멋진사내는 씨익 웃었다.

“아내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내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사내들이 잘 이해되지 않아요. 특히 남자들이 노후에도 자립해서 잘 살려면 열심히 운동해야 돼요. 혼자서도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직접 지은 산골 한옥에 사는 신성일은 이토록 삶 자체가 즐겁다. 아내 없이 빨래하고 요리하고 집 꾸미는 그의 모습은 낙천적이고 유연해 보였다. 나이가 들어도 더 매력적인 남자, 신성일이기 때문에 혼자 사는 모습까지도 더욱 멋지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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