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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 문화

거짓말은 소설가에게 맡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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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쫀득’이라는 게 있었다. 초록·노랑·빨강… 현란한 형광의 자태를 뽐내던, 날로도 먹고 연탄불에 구워도 먹고 가늘게 찢어도 먹는, 달짝지근하고 쫀득쫀득한 맛에, 향기로운 과일 향이며, 먹어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엄포까지, 불량식품의 대명사 쫀득이는 그야말로 지혜의 열매, 금단의 열매, 유혹의 열매였다.

과자 사먹어야 해, 쫀득이 같은 건 안 돼. 어느 날 내 손에 50원짜리 동전과 함께 올려진 단서 조항. 물론 과자를 사 먹을 생각이었다. 쫀득이는 불량식품이니까. 하지만 막상 가게에 도착했을 때, 나의 각오와 다짐은 물거품이 되었다. 과자 한 봉지 값이면 쫀득이에 아폴로에 뽑기도 한 번 할 수 있는데.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가. 다른 애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데. 나라고 못 먹을 게 어디 있겠는가. 엄마가 일일이 확인할 것도 아니고. 나는 정말 지혜롭고 똑똑한 아이였다.

물론 걸리면 끝장이었다. 거짓말 뒤엔 빗자루가 따라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거짓말에 대한 엄마의 빗자루는 맵고 가혹하다는 것도. 증거가 될 만한 것은 없애야 했다. 아껴먹고 싶은 마음도, 이참에 으스대고 싶은 마음도 참아야 했다. 나는 담벼락에 혼자 숨어 아무도 모르게 쫀득이와 아폴로를 먹어치웠다. 손가락에 달라붙은 것까지 쪽쪽 빨아먹었다. 눈물 나게 맛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뽑기까지 욕심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그걸 옆집 계집애에게 들키지만 않았어도, 쫀득이에서 침 발라 오려낸 코끼리만 아니었어도 완벽히 속일 수 있었다. 쫀득이 안 먹었어. 형광 코끼리를 손에 쥔 엄마에게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간에 포기할 수 없었다. 거짓말을 인정하면 다시는 내 손에 동전은 쥐어지지 않을 테니까.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았다. 그런데 거짓말을 할수록 내 말이 진실인 것만 같았다. 바락바락 우겨대다 보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깟 쫀득이 하나 먹었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뻔한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하는 내가 우습더란다. 흠씬 두들겨 패는데도 끝까지 안 먹었다고 하니, 어쩐지 내 말이 사실인 것도 같더란다. 알고 있는 진실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얘기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그럴싸했단다. 아주 소설을 써라, 했단다. 그러면서 내 어머니, 내가 소설가가 될 줄 진즉에 알아봤다고 단언한다. 거짓말 때문에. 먹을 것에 관해서라면 끝끝내 꺾지 않는 그 능청과 집요함 때문에. 그게 작가적 자질 아니겠냐고 동의까지 구하신다.

소설은 거짓말, 소설가는 거짓말쟁이, 뛰어난 소설가는 거짓말에 능통한 사람. 어머니의 소설론은 차치하더라도, 작가적 징후치고는 좀 구차하고 치욕스럽지 않은가? 하지만 곰곰 생각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싶었다. 어차피 소설이란 그럴듯한 거짓말, 거짓말 같은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뻔한 거짓말을 깜박 속아 넘어가게 만드는 게 작가적 재질이라 할 수 있지도 않겠는가?

때때로 당신은 언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에 재주가 있다는 걸 언제 알았냐고. 말하자면 내 몸속에 흐르는 소설가의 피를 확인해 보자는 것인데, 그때마다 나는 쫀득이와 혼자 숨어 먹던 담벼락과 거짓말을 떠올린다.

뻔한 거짓말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거짓말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도 보인다. 거짓말을 돕는 협력꾼도 생겼지만 아무리 들어봐도 앞뒤가 안 맞는다. 가만 보고 있자니 부아가 난다. 문득 빗자루를 그러쥐고 무섭게 눈을 부라린 어머니의 불호령이 생각난다.

나는 조용히 묻는다. 당신들 언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가. 작가적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는가? 허나, 거짓말에도 재주가 필요하다. 그것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부리는 얄팍한 재주가 아니다. 소설가는 진짜 거짓말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다. 그것은 당신들의 재주 부림과는 분명히 다르다. 소설가의 거짓말은 그것이 목적이고 몸부림이고 절규인 거다. 차라리 거짓말은 소설가에게 맡겨라. 진짜 거짓말은 소설가의 몫이다.

천운영 소설가

◇약력=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바늘』『명랑』『그녀의 눈물 사용법』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