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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 칼럼

뇌 영상과 꿈의 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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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20세기 인류 최고의 천재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의 뇌(腦) 속에는 천재의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1955년 4월 18일 새벽 1시15분 아인슈타인이 사망하자 이를 검시한 토머스 하비 박사는 그의 뇌를 해부, 천재의 비밀을 알려줄 단서를 찾으려 했다. 부검 당시 아인슈타인의 뇌 무게는 1.22㎏으로 일반인보다 오히려 0.14㎏이 가벼웠다. 하지만 뉴런(신경소자)당 뇌세포의 수가 일반인보다 73%나 많았고, 두정엽의 크기는 일반인보다 15%나 커서 개념을 창안하거나 수학적 사고가 탁월했다고 여겨진다. 우리의 뇌는 인간의 신체구조 중에서 가장 복잡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인류는 이 뇌로 문명을 일구어 지구를 지배하고 있으며,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이므로 인간의 뇌야말로 우리 인류의 궁극적인 탐구의 대상일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뇌에 대한 연구가 주로 해부학적 관점에서 이뤄져 왔다. 60년대부터 뇌의 기능도 뉴런 간에 극미량의 화학물질(신경전달물질)을 매개로 하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뇌의 기능적 측면의 연구가 활발해졌다.

70년대부터 분자생물학적 기법의 발달로 수많은 신경전달물질의 유전자 구조가 구명되면서 미지의 병이던 뇌질환도 유전자 질환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정신분열병은 5번, 우울병은 11번, 노인성치매는 21번 염색체의 이상에 의한 질환인 것이다.

80년대 이후 뇌과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방사선의학의 발달로 살아있는 뇌 기능을 영상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단일광자방출촬영술(SPECT), 양전자방출촬영술(PET), 기능적핵자기공명촬영술(fMRI) 등 최첨단 뇌 영상기기가 개발됐다. 88년 죽은 사람의 뇌를 이용해 뇌좌표지도(Talairach 뇌지도)가 완성되었는데, 이 뇌지도를 이용한 해부학적 영상 위에 SPECT, PET, fMRI 등의 기능적 뇌 영상을 합쳐(융합영상) 뇌의 활성화 위치를 알 수 있게 됐다.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자극을 분석하는 곳은 후두엽이고, 계획을 세우고 뇌의 다른 부위를 종합 관리하는 곳은 전두엽이다. 또 뇌의 포도당 대사와 혈류 분포, 그리고 도파민 등 각종 신경전달물질의 수용체도 영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한방 침술을 시행한 후 뇌 영상에서의 반응을 관찰해 침술의 기전을 파악하기도 한다. 이제 기존의 축적된 신경과 정신과적 지식을 살아있는 사람의 뇌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게 돼 블랙박스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최근 노령인구의 증가에 따라 치매·파킨슨병·우울증 등 퇴행성 뇌질환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PET 영상은 치매(알츠하이머) 환자에서 양측 측두엽의 포도당 대사의 감소나 아밀로이드 성분의 뇌 침착 소견을, 파킨슨병 환자에서는 도파민 수용체의 소실을 보여줌으로써 조기 진단을 통해 병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

21세기는 융합과학(Fusion Science)의 시대다. 방사선의학 기술은 방사선 및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영상·정량계측·전산처리·물리학·공학·통계학·생물학·화학·약학·의학 기술이 접목된 가장 대표적인 융합과학 분야다.

20세기 초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연구하기 위해 환자들과 자기 자신의 꿈을 분석, 현대 정신의학의 기초를 만들었다.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욕망이나 불안이 압축, 상징, 왜곡 등 발현과정을 거쳐 ‘꿈속의 영상’으로 나타나므로 이를 분석하면 우리 정신세계의 역학관계를 구명할 수 있다는 것. 그 후 100년이 지난 지금 의학자들은 방사선의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첨단 뇌 기능영상’을 이용, 뇌의 숨은 비밀과 우리의 정신세계를 밝히려 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100년 이내에 우리는 뇌 영상으로 꿈을 해석하고 영상으로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김종순 한국원자력의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