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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말라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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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말라리아(malaria)라는 병명은 이탈리아어로 mal(나쁜)과 aria(공기)의 합성어다. ‘나쁜 공기’가 원인이라고 여겨 이런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인도의 의사는 BC 5세기에 이미 이 병을 모기가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말라리아는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도 무너뜨렸다. 인도 왕은 미인의 피부에 독을 발라 그를 잠자리 도중 암살하려 했다. 이 음모는 참모들에게 발각됐지만 말라리아 모기엔 굴복했다(『재미있는 병과 약 이야기』 이오키 쿠니오 저).

로마 제국을 말라리아가 무너뜨렸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십자군 전사 고드프리가 “로마는 칼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열병으로 지킨다”고 했을 만큼 로마에선 말라리아가 만연했다. 팔라티노 언덕에 열병의 신을 위한 신전이 지어진 것은 이래서다.

말라리아는 키니네가 나오기 전까지는 불치병이었다. 키니네는 남미 안데스가 원산인 킨키나 나무의 껍질에서 얻은 ‘생약’이다. 킨키나 나무는 예수교단 신부들에 의해 17세기에 유럽에 전해졌고, 이후 영국의 찰스 2세, 프랑스의 루이 14세 등 말라리아에 걸린 왕을 살려내면서 명성을 쌓아갔다. 1820년 프랑스의 펠르티에와 카벤토는 이 나무의 껍질에서 알칼로이드 성분을 추출한 뒤 키니네라 명명했다. 장기간 사용하면 약효가 떨어지는 여느 말라리아약과 달리 키니네는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요즘 우리 국민이 말라리아 유행 국가로 여행하기 전에 미리 복용하는 약은 키니네가 아니라 미군이 제2차 세계대전 중 개발한 합성약 클로로퀸이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상대적으로 ‘순둥이’다. ‘독종’인 열대열 말라리아와 달리 생명까지 위협하진 않는다. 우리 것은 ‘온대열 말라리아’ ‘삼일열 말라리아’다. ‘하루 걸러 앓는다’며 ‘하루거리’라고도 부른다. 한방명은 학질이다. 사람이 견디지 못할 만큼 포악스러운 질병이란 뜻이다. 『동의보감』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오한과 열이 반복되는 증상을 “정기(正氣)와 사기(邪氣)의 투쟁”으로 기술했다.

보건당국은 올해 들어서만 벌써 300명 이상이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전한다. 지금부터 시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얼룩날개 모기는 기온이 25도가 넘어야 제 세상을 만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 이후 92년까지 말라리아는 잊혀진 질환이었다. 93년에 재발한 뒤에도 몇해 동안 연간 환자 수가 100명도 채 되지 않았고 휴전선 주변에서 근무하던 병사나 제대 군인에 국한해 발생했다. 그러나 요즘 의료계에선 말라리아가 ‘토착병화’할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지구온난화가 원인이란 주장이 있지만, 더 큰 요인은 ‘방심과 무관심’일 수도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