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선족은봉인가>2.외국서 미아신세-취업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기자는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연수현 수산향에 사는 김성모(金成模.42)씨가『한국인에게 취업사기를 당했다』며 국내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나섰다.하지만 그는 이미 빚쟁이를 피해 세번이나 주소를 옮긴뒤였다.
물어물어 가까스로 산골마을에서 만난 金씨의 첫마디는『그 사기꾼 놈을 ×× 죽이고 싶다』였다.
金씨는 94년초 한국에서 H무역회사를 경영한다는 申모씨에게 해외취업사기를 당해 난데없이「국제 미아(迷兒)」가 됐다는 것.
申씨는 당시『미국 사이판 섬에 가면 한국보다 몇배 수입이 좋은일자리가 있다』며 유혹했다고 한다.
金씨는 아내가 한국에서 벌어온 돈과 연 5푼의 고리채를 얻어농가(農家)6채값인 3만5천위안(元)을 내고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숙식제공,월수(月收)1천달러」라는 취업조건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H무역은 유령회사였고 일자리도 없었다.
金씨처럼 사기당해 온 조선족은 27명.이들은 천막이나 다름없는 가건물에서 집단거주하며 그야말로「거지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침구가 없어 땅바닥에서 잠을 청해야했다.현지 한인교회의 도움으로 이불 7채를 얻었지만 배만 간신히 덮을 정도였다.
서너명이 겨우 잡일을 얻어 생긴 수입으로「1식1찬」의 공동 식사를 했다.승용차없이 열대의 폭염속을 헤매다 일사 병에 걸려 쓰러지기 일쑤였다.그래도 金씨등 7명은 한인 식당에서 번 돈으로 비행기삯을 마련,7개월만에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金씨는그후 한국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
『천국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지옥이었지요.하지만 나머지 스무명은 지금도 사이판의 따가운 햇살 아래서 떠돌고 있으니….』 일부 한국인들이 해외사정에 어두운 중국내 조선족을 상대로「아메리칸드림」까지 부추겨 이같은 사기를 치고 있다.
93년8월「연변일보」에는 미국 여권비자를 받아준다는 광고가 실렸다.수속비 5천달러(4만元)를 내면 된다는 말에 지린(吉林)성 투먼(圖們)시에 사는 박경호(朴京浩.37)씨는 밤새워 아내와 상의한뒤 집을 팔아 자금을 조달했다.
10년간 한푼도 안쓰고 월급을 모아야 할 액수였지만 미국에서열심히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한국에서 출판사를 하는 金모씨가 모집한다기에 믿음도 갔다.
하지만 金씨는『1주일만 기다려라』『보름후면 확실히 보내주겠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혼당했고,돈이 없어 딸을 학교에 보낼 수도 없어요.』 돈을 못돌려 받을까봐 신고도 못하고 있다는 朴씨의 한숨속에 조선족의 갑갑한 심정이 짙게 배어 나왔다.취업미끼 대상지는 비단 미국만이 아니다.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정부 노무수출 담당관이던 오선녀(吳善女.29)씨는 94년9월 말레이시 아에서사업한다는 柳모씨에게 속아 40여명한테 거둔 17만8천원(元)을 날렸다.결혼자금을 포함한 전재산을 처분해 피해액을 물어준 吳씨는 직장에서 파면된 뒤 혼자 살고있다.
중국 동북3성=박신홍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