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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그 치밀한 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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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결국 일본이 뇌관을 건드리고 말았다. 중학교 사회과용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교과서와 독도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다. 폭발력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이명박 대통령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가 미래지향적인 ‘신 한·일관계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해설서는 일본 정부가 지난 3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내놓은 도발이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독도라는 영토 그 자체에 욕심이 있거나, 주변 해양 자원에 관심이 있거나, 우파 결집에 마음이 있거나, 아니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노린 다목적 포석일 수 있다. 앞으로도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이름)는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비슷한 프로젝트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발표 예정인 고교 해설서에는 독도 영유권에 대해 더 강력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일본은 독도 문제의 국제분쟁화를 위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시마네(島根)현은 2005년 2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해 한국을 자극했다. 외무성은 올 2월 자체 웹사이트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란 내용의 팸플릿을 확대 게재하면서 대못질을 해놨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노골적으로 제기하면서 그들의 의도를 관철할 만한 수단을 마련해놓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제사법재판소에 갈 경우에 대비해서도 이미 많은 자료를 축적해놓고 우군을 끌어들이기 위해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독도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분류할 때 사용해온 주제어 ‘독도’를 폐기하고, ‘리앙쿠르 암석’으로 대체하려다 일단 결정을 무기 연기했다. 도서관 측은 분류체계 개편에 일본 정부가 영향을 미치려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본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도서관 측이 스스로 알아서 이런 조치를 하겠다고 나섰을 리는 만무하다.

실제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영향력과 로비력은 막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물론 그저 얻은 것은 아니다. 일본이 2007~2009년 납부할 유엔분담금 비율은 16.6%로 미국에 이어 둘째로 많다. 일본의 2006년 공공개발원조(ODA) 규모는 116억800만 달러에 달했다. 세계 3위다. 한국의 ODA 공여는 일본의 26분의 1에 불과한 4억4700만 달러였다.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크기 때문에 그만큼 세계 무대에서의 발언권과 영향력이 강해진 것이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상은 “국가와 국가의 주장에 차이가 있는 것은 항상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냉정하게 대응해 입장 차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도 문제를 국가 간 입장 차이로 몰아가면서 여차하면 국제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가. 발끈한다고 해결될 일은 거의 없다.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지위를 갖고 있는 일본과 상대적 열세에 있는 한국 간의 외교 게임은 결코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차분한 대응을 넘어 지금부터라도 발 벗고 뛰어야 한다. 특히 적극적인 독도 외교를 벌여야 한다.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일본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를 다른 나라 정부나 민간기구 등에 설득력 있게 홍보해야 한다. 미 의회 도서관의 분류체계 개편 시도와 같은 사례가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철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관련 예산이나 민간 학술기구 지원도 대폭 늘려야 할 것이다. 여나 야가 있을 수 없다. 초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이 문제를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역풍을 맞을 것이다. 국가적인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경환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