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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운동10년,회고와 전망'-"역사비평"봄호 특집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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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학계는 한국사회 인식에중대한 변화를 겪었다.당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연구자들은 85년께부터 집단적 형식으로 새로운 인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도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연구단체들이 대거 출현했다.
82년 역사학도 중심의 「망원 연구실」이 생겨난 것이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 민중사』(풀빛출판사)를 써냈다 하여 필자들이 법정에 서는 어려운 상황이었다.곧 이어 사회학 전공자들이 모인 산업사회연구회,한국 근-현대사 연구와 대중화를 기치로 내건 역사문제연구소가 출범했다.그후 정치.보건.철학.문학.
공간과 환경 등의 분야에서 연구단체들이 나왔고 88년엔 이들 13개 단체가 모여 학술단체협의회(현 상임공동대표 박진도 충남대 교수)가 설립됐다.현재는 16개 단체가 가입돼 있다.
새로운 학술운동이 출범한지 올해로 어언 10여년.이를 계기로최근 학술운동의 과거와 미래를 토론하는 자리가 잦아졌다.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은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이화)는 이달말 출간될 계간지 『역사비평』(봄호)에 특집 좌담 「 학술운동 10년,회고와 전망」을 마련했다.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학술운동의 등장 전후 60년대 이후 역사학계의 식민사관 극복 논의,사회과학계의 중산층 논쟁 등이 있었으나 최초의 조직화는 80년대의 학술운동이었다.학문활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김동춘.서울대 연구원).학술활동이때로는 실 천을 위한 운동 차원으로 나갔는데 이런 경험을 다른나라에선 찾기 어렵다(안병욱.가톨릭대 교수).우리가 주권을 가진 역사에서 가장 암흑기에(이이화)스승도 없고 선배도 없고 전통도 없는 일을 벌였다(장하진.충남대 교수).
◇연구성과와 한계 70년대말 한국사 연구자는 1백명을 넘지 못했지만 이제 수백명에 이른다.그만큼 연구 영역도 넓어져 현대사나 민중의 역할에 많은 관심이 가해졌다(안병욱).민족운동사 연구도 붐을 이루었고 역사학의 대중화에도 눈을 떴다(정태헌.고려대 강사).사회학에선 계급론과 사회운동론.통일문제.노동문제.
사회구성체론.미국에 대한 인식과 북한 바로알기 등이 호황을 누렸으나 시류에 약한 학문인지 깊은 뿌리를 내리진 못했다.사회구성체 논쟁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안목을 제시했으나 구체적으로 실증하기엔 연구의 축적이 미진해 추상적 주장이 반복됐다(장하진).한국정치연구회의 교과서 새로 쓰기,해방전후사와 민주주의 연구도 한 성과였다(김동택.서강대 박사과정).
◇당면 문제와 미래과제 우리의 무역량이 세계 10위권이고 경제적으로도 상위권이라 하나 문화적으론 겨우 중위권에나 들어갈지.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선 세계 몇 위나 될지 창피할 지경이다(안병욱).「무엇을 연구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이사라졌다.
한 예로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국제적으로 매우 높은 상황에서 이에 대한 연구를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우리 사회가 얼마나 골깊은 학문의 식민지사회인가를 절감한다(장하진). 80년대 학술운동은 미래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선점(先占)했었다.미래에 대한 전망을 종합적으로 제시하는 일은 지금도 중요하다.또 최근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도 자리를마련하자.PC통신상에서 대중과 만나고 토론을 벌여야 한다(김동택).현재의 학술운동은 침체기다.이제 제너럴리스트적 분위기를 씻고 스페셜리스트적으로 발전해나가야 한다.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정태헌).
한마디로 학문의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문제다.대학을 개혁하고 지식사회 전체를 개혁하고 독자적인 학문생산능력을 갖추는 일,이것이 향후 10년내 연구자들이 감당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김동춘).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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