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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10만리>17.메콩강을 따라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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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그날밤 루앙프라방에서 묵은 탐사팀은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삼륜차를 빌려타고 거리로 나선다.
박물관을 찾아 보려고 했으나 이곳 박물관은 연중 폐문.제법 영리하게 생긴 30대의 삼륜차 운전수 포이가 방황하는 탐사팀이보기에 딱했던지 은근히 제안을 해온다.
삼류차 운전수 포이 덕분에 루앙프라방에서 찾은 우리 문화는 바로 사자탈춤.그런데 규제가 엄격해 오직 설 축제때만 보여 준다고 했다.그러나 탐사팀이 루앙프라방에 도착한 것은 설이 한달도 더 지나서였다.탐사팀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기 위해 우선 시주를 듬뿍해 그 절 노주지를 구워 삶고,사자놀이 책임자를설득해 기어코 사자놀이를 하는데 성공했다.사자탈춤 책임자가 음식을 차려놓고 고사를 정성들여 지낸후 마침내 사자탈춤이 시작됐다. 라오스의 인간 문화재들이 사자탈을 쓰고 음악소리에 맞춰 흔들기도 하고 길길이 뛰기도 한다.
필자는 라오스의 사자탈춤을 보면서 북청이나 봉산 사자탈춤이 확실히 남방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 사자탈춤 놀이는 한때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가 모르는 어떤 연유로 인해 함경도 북청이나 황해도 봉산주변에만 남게됐을 것이다.
사자란 동물은 남방계 맹수다.옛날 사람들은 사자의 용맹성이나위풍 당당한 모습을 보고 사자를 매우 숭배했다.그래서 자기네들의 위대한 지도자나 부족 이름에 곧잘 사자의 이름을 붙여 자신들의 권위를 나타냈다.
옛날 우리나라에도 사자를 숭상했던 기록이 남아 있어 북청 사자놀이나 사자가 등장하는 하회탈춤 놀이의 「사지」(사자)유래를한층 가시적으로 밝혀 준다.후한서『동이전』은 『…조그만 마을이라도 모두 우두머리가 있다.제일 큰 고을에서는 이 우두머리를 신지(臣智)라고 부르고…』라고 전하고 있다.
바로 그 신지라는 말이 사자를 뜻하는 인도어 「싱」또는 「싱가」에서 온 말일 것이다.
가장 큰 마을을 지배하는 부족장 정도라면 사자라는 칭호를 붙여주어야 그 권위에 어울렸을 것이다.
사자탈춤 놀이가 끝난 다음 50대쯤 보이는 사자탈춤 책임자로부터 사자탈춤 놀이의 유래를 듣는다.태초에 남녀 두사람이 하늘에서 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하느님이 노해 줄을 끊어 버렸다.하늘로 다시 올라 갈 수 없게된 두 남녀는 지상에 살면서 일곱 자식을 두었다.
그후 하느님의 노여움이 풀려 줄이 하늘로부터 다시 내려와 두남녀는 하늘로 올라가야만 했다.그러나 자기네들이 난 자식들과 함께 갈 수는 없었다.그들은 하는 수 없이 일곱 자식을 백수의왕인 사자에 부탁하고 사자는 아이들을 성심껏 길렀다.
일곱 아이들은 자라서 인간 세상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그래서 동남아 사람들은 사자의 은공을 못잊어 매년 사자탈을 쓰고 축제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또 이 사자탈춤을 통해 고조선의 환웅.부여의 해모수와유사한 천손설화(天孫說話)를 만나게 된 것이다.천손설화는 인도의 라마왕이 하늘로부터 지상세계로 하강했다는 탄생설화와도 맥락을 같이한다.우리나라 사람치고 누가 자치기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자치기는 우리나라 사람 누구에게나 아주 정겨운 놀이다. 필자는 이 지구상에서 우리처럼 자치기를 하는 사람들을꼭 찾아보고 싶었다.한번쯤 그들과 함께 어울려 자치기를 하면서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었다.그러나 이세상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우리처럼 자치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속 으로 안타깝기만 했다.아마 어느 곳에 있기는 있는 모양인데 주마간산식으로 떠도는 필자의 눈에 띄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날 행운은 우연히 찾아왔다.
하루는 자동차를 타고가다 필자와 동행한 서사장이 급히 필자에게 하는 말이 차창밖을 얼핏 보니 아이들이 길가에서 막대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데 아무래도 자치기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화다닥 놀란 필자는 차를 타고 급히 현장으로 달려가 보았다.과연자치기를 하고 있었다.라오스의 동네 아이들이 모여 우리가 어렸을 때 했던 것과 방법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자치기를 하고 있었다.탐사 대원들은 반가운 나머지 그 아이들과 어울려 자치기를하며 놀았다.
아마도 그 동네 조무라기 아이들은 탐사팀이 분명 외국 사람들인데 어떻게 자치기를 할 줄 알까 하고 속으로 놀랐을 것이다.
필자가 그후 또 자치기를 하며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본 것은 베트남 메콩델타 칸토시부근에서 였다.이 자치기는 메 콩강 유역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것일까, 아니면 거꾸로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것일까.
***탐사대원들 함께 놀아 다음날 탐사팀은 삼륜차 운전수 포이로부터 물레방아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시골 마을로 찾아 간다.루앙프라방에서 남쪽 시골길을 더듬으며 22㎞쯤 갔을까.그곳 반타펜 마을 위쪽에 땃구엉시 폭포가 있었다.
인적이 없는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폭포 주위는 속세를 떠난듯한 유현(幽玄)한 분위기가 있었다.때마침 선녀들이 하강했는지 어여쁜 아가씨 두명이 폭포 밑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몇달째 집을 떠나있는 탐사 대원들의 따가운 시선이 저절로 선녀같은 아가씨들 쪽에 못박혔다.
『옷을 입은채로 하고 있지 않아?』 물론 그녀들에게 수영복 같은 것이 있을 까닭이 없다.아니,그것보다 탐사팀은 그때까지 남방 풍속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남방의 여인네들은 대개 통자루와 같이 생긴 옷을 입은채 길가에서 목욕을 한다.그래서 물에 젖은 옷이 몸에 착 달라붙으면 드디어 남방 여인의 그 잘생긴 육체의 곡선이 눈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남방 여인들의 목욕하는 광경을 보면 아주 육감적인 데가 있다.그래서 남방 국가에서는 처녀들이 목욕할때 입는 옷에 무척 신경을 쓴다.지나가던 총각들이 목욕하고 있는 처녀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고구혼을 하는 수가 많기 때문이다.
***여인네들 옷입고 목욕 탐사팀은 물레방앗간을 찾아 폭포 아랫 마을로 간다.
우리나라의 옛날 물레방아와 똑같이 생긴 프라방의 물레방앗간 앞에 서서 필자는 잠시 고향 생각에 잠긴다.
독자 가운데 혹시 물레방앗간과 관련있는 사연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곳으로 단연 라오스에 있는 반타펜 마을의 물레방앗간을 추천하고 싶다.물레방앗간 주변 풍경이 캘린더의 표지로 나와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
탐사팀은 루앙프라방에서 다시 메콩강을 따라 내려간다.
어느덧 메콩강은 라오스 대륙을 빠져나와 태국 동북부 농카이와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사이를 흘러 내려가고 있다.이곳은 메콩강의 중류쯤 되는 곳인데도 강폭이 2㎞가 넘어 건너편에 있는 라오스 땅이 까마득히 보인다.과연 메콩강은 세계 의 강다운 면모로 변해 있었다.
비문명 지대를 흘러내리는 메콩강 유역에도 개화의 동이 트고 있었다.20세기 말의 경이적인 현대 문명이 이곳까지 스며들어 오랜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94년4월에는 메콩강이 생긴이래 처음으로 태국의 농카이와 라오스의 수도 비 엔티안을 잇는현대식 다리가 놓여졌다.다리 이름은 「우정의 다리」.
개통식때는 태국의 국왕과 라오스의 총리가 다리 중간에서 만나악수를 나누는등 이 우정의 다리 완공은 동남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러나 메콩강으로 보면 태고의 자연을 깨뜨리고 인간에게 길들여져 간다는 서글픈 역사의 시작이기도 했다.
글.사진=김병호 박사(유엔FAO아프가니스탄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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