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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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맞는 것도 같고,안맞는 것도 같은 것이 점이라고 나선생은 말했었다.샤머니즘 연구는 하되 무술(巫術)을 떼치고 보는 사람이다.그러면서도 무당에 대해서는 따스한 보살핌의 정을 갖고 있는사람.스티븐슨 교수를 소개해 주면 좋은 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노(老)부인은 낭랑하게 읊조리기 시작했다.아리영의 신수 풀이를 하고 있는 듯했으나 일본어를 모르는 아리영으로서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일본말에 능통한 이자벨이 부지런히 메모하고 있고,스티븐슨 교수는 녹음을 하고 있다.시험용 생쥐가 된 기분이다.
『이따가 얘기해 드릴게요.』 이자벨이 필기하며 아리영에게 속삭였다.열 자의 한자 풀이를 듣고 싶었으나 그럴 틈이 없었다.
이자벨과 샤먼의 일문일답이 시작되었다.본격적인 취재로 들어선것같았다.
스티븐슨 교수가 가방 안에서 반지갑 하나를 꺼내 경상 위에 올렸다.갑 안의 물건을 알아맞히는 투시력(透視力) 테스트라고 이자벨이 귀띔해 주었다.
반지갑을 응시하던 노부인이 엷은 미소를 하얀 뺨에 띄웠다.물건이 보인다는 사인일 것이다.
그녀가 긴 한숨과 더불어 말을 토해내자 스티븐슨 교수와 이자벨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워했다.갑 안에 들어있는 자수정(紫水晶) 반지의 생김새를 정확히 알아맞혔다는 것이다.
『경주산(慶州産) 자수정이군.』 설명 끝에 그녀는 한국어로 혼잣말했다.분명히 우리말이었다.일본 무녀(巫女) 입에서 우리말이 나온 것이다.믿어지지 않았다.
『한국분이신가요?』 아리영은 저도 모르게 소리쳐 물었다.
노무당은 그 말엔 대답치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부인은 좁은 데서 살 분이 아니예요.더 넓은 데로 나가 사세요.아름다운 백마(白馬)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달려야 비로소말일 수 있는 것을….』 느닷없이 한국어로 주고 받기 시작한 두사람의 대화에 스티븐슨 교수 내외는 어이없어 했다.
『움츠리지 말고 자유로워지세요.그래야 좋은 기수(騎手)를 만날 수 있어요.이별을 두려워말고 누리세요.그래야 자랄 수 있어요.』 무당의 신수 풀이 같지 않고 딸에게 이르는 어머니의 사설처럼 들렸다.온천물 같이 더운 것이 가슴에 괴었다.
노부인이 당부했다.
『이 미국분들은 나를 조사하러 온 모양인데 이제부턴 우리말로할테니 통역해 주시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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