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미>반도체칩 속도경쟁의 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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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964년 당시 37세의 과학자 고든 무어는 칩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가 해마다 배로 늘어나는 데 주목했다.집적회로가 발명된지 6년만이었다.
무어는 「일렉트로닉스」란 잡지에 이를 소개했다.해마다 2배는얼마후 18개월만에 2배로 수정됐다.지난 30여년간 칩의 속도는 실제 18개월만에 2배 꼴로 빨라져왔다.이른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다.
캘리포니아공대(CIT)출신의 화학및 물리학박사로 인텔을 공동창업한 그는 실리콘 칩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그와같은 과학자들이그 혁명의 주체가 된다는 비전을 가졌다.컴퓨터혁명은 그에게 「끝이 열려있는(open-ended)」혁명이었다.
정보의 처리가공에 기술적 한계는 없는 것으로 믿었다.
마이크로 프로세서 칩 하나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는 7백만개에육박한다.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숫자가 많을수록 저장능력은 물론이고 트랜지스터간의 연결및 통합기능도 고도화돼 파워와 속도는 올라간다. 「무어의 법칙」은 칩 세계를 계속 지배할 것인가.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어넣는 일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그러나 제조및 생산과정에서의 기술적 한계와 경제성이 갈수록 발목을 잡는다.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숫자가 배가 되면서 칩의 제조비 용도배로 늘어난다면「무어 법칙」의 의미는 흐려진다.지금까지는 비용증가를 수반않는 숫자의 배가(倍加)였다.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제조단가가 절반으로 줄었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칩이 날로 고도화되면서 생산장비와 1백40여 공정(工程)의 투자비용은 하늘로 치솟고있다.1메가바이트짜리 칩 가격은25년전 55만달러에서 지금은 38달러로 떨어졌다.그러나 이를제조하는 칩 공장의 건설비용은 4백만달러에서 12억달러로 치솟았다.인텔은 3년마다 새로운 칩 생산을 위해 멀쩡한 기존생산시설을 새 것으로 바꿔친다.앞으로 5년후면 칩 공장의 건설단가는25억달러로 올라간다고 한다.펜티엄칩 속도가 예상에 못미친다는인텔 스스로의 고백 또한 현실 적 장벽을 암시한다.데스크 탑 컴퓨터의 성능은 10년전의 50배다.그렇다고 사무효율이 50배로 향상되지는 않았다.속도 빠른 칩의 개발경쟁을 멈추고 디자인과 종류가 다양한 칩의 생산쪽으로 반도체산업의 성숙을 촉구하는주장도 고개를 든 다.보다 나은 컴퓨터의 설계와 소프트웨어개발을 위한 시간적 여유는 전체산업의 성숙에도 긴요하다.단일 고단위 칩의 개발경쟁에 따른 생산과잉을 예방하는 길도 된다.
자동차에 속도만이 능사가 아니다.벤츠나 엑셀이나 시속 1백20㎞는 같이 달릴 수 있다.어떻게 달리느냐가 다르다.무어 스스로 21세기초부터 칩 성능의 배가(倍加)속도는 둔화될 것으로 감지한다.곁들여 컴퓨터혁명은 지금도 진행중이고 섣 부른 감속은추돌(追突)이나 자멸을 결과할 수 있다는 경고도 빼놓지않는다.
어떻든 칩 산업은 성능향상과 코스트 낮추기의 1단계를 지나 제품의 고도화와 다양화단계로 굽이를 틀고있다.「무어 법칙」의 어쩔 수없는 퇴조다.
(본사 칼럼니스트 ) 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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