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地圖>문학 5.동국大 국어국문과 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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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 『님의 침묵』에서 대하소설 『태백산맥』까지.만해 한용운으로부터 작가 조정래로 쭉 이어 뻗은 동국대 국문과 출신 문인 4백여명은 한국 근.현대문학사의 근간이다.또 전국 곳곳의 대학에 몸담고 있는 1백20여명 동문 국문과 교수들은 끊임없이 제자들을 문인으로 양성해 한국 문단을 살찌우고 있다.『세계의 마지막 나라 대한민국의/맨 마지막 정적(靜寂)과 의무속에 자리하여/가장 밝은 눈을 뜨고 있는 모교(母校)여./삼세(三世)가운데서도 가장 쓰고 짜거운 한 복판/영 원속의 가장 후미진 서재./최후로 생각할 것을 생각하려는 사람들이/모여 사는,/최후로책임질 것을 책임지려는 사람들이/모여 사는 모교여/우리 고향 중의 고향이여.』 미당 서정주 시인은 「우리 고향중의 고향이여…」라는 시에서 자신의 모교 동국대를 「영원 속의 가장 후미진서재」라고 읊었다.과거.현재.미래라는 삼세의 한복판로서의 시공을 아우르며 초월해가는 영원속의 그 「서재」야말로 순수문학의 핵 이며 동국문학의 전통이다.동국문단은 한용운으로부터 시작된다.동국대 전신으로서 1906년 설립된 명진학교 제1회 출신인 한용운은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발표,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으며 한국시의 자존을 대표한다.차원 높은 종교의식과예술의식이 빛나는 형상으로 빚어진 그의 시들은 당대를 풍미하던감상시.낭만시.상징시등 부박한 외래의 모방과 허무주의 등을 완전히 헛것들로 돌리며 우리 시와 우리의 혼.지조 등을 드높였다. 이런 시정신은 서정주로 심화,확산돼 이어지며 거대한 「동국시맥」을 이룬다.1935년 시 『자화상』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서정주는 지금까지 60여년의 시적 편력을 통해 미학적.정신적 양측면에서 명실공히 한국 최고시의 경지를 경신해 가고 있다.뿐만 아니라 종신교수로서 수많은 후학들을 시단에 내보내 소위「미당사단」혹은 「미당학교」를 건설했다.
서정주와 전후해 문단에 나온 신석정.조지훈.김달진.윤곤강.오화룡.이동주.이원섭.함형수.최재형 등도 초창기 동국시단의 성좌들이다.1931년「시문학」동인으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신석정은 목가적 시풍으로 동양적 낭 만주의 시세계를 개척했다.1935년「시인부락」「시원」동인으로 활동한 김달진은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한국정신의 진수를,1939년「문장」을통해 등단한 조지훈은 선적 법열의 세계를 열어젖혀 시단의 한봉우리씩을 점하고 있다.
명진학교.중앙불교전문학교.혜화전문학교 출신 선배들의 전통과 지도에 힘입어 1946년 동국대학으로 승격하며 국문과가 개설되면서 동국문단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우선 국문과 교수들로 역사소설의 지평을 연 박종화,당대 최고 시인이며 평론 가들인 정지용.김기림.김광섭.이헌구.이하윤등과 정인보.이병기.양주동.조윤제.이희승 등 당대의 석학들이 교수진으로 포진한다.
이들의 지도밑에서 시쪽에서는 국문과 1회 졸업생인 박항식이 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다.원광대 국문과 교수로재직하다가 지난 85년 타계한 박항식은 제자들에게 창작의욕을 북돋우며 소위「원광대 사단」으로 불리는 문맥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장호(51년),고원(52년),현 문협이사장인 황명.김종길(55년),랑승만.김민부.신기선.이성환(56년),김종원.송석래(57년),송혁.박경용(58년),전승묵.황갑주(59년)등이 잇따라 등단하며 해방에서 이어진 동족 상잔으로 황폐화된 50년대시단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60년대 들어서는 60년에만 김사림.김민성.공석하 등 3명이 등단한데 이어 강민.박진호(62년),조상기.신규호.이우석(63년)등이 뒤를 이었다.65년에는 홍신선.박제천.정의홍. 강희근.김초혜 등 5명,66년에는 김규화.문효치.홍희표 등 3명,67년에는 고교시절 시집을 상재한 문정희가 대학 1년생으로 등단해 타고난 시재를 과시했으며 68년에는 마종하.정양이 등단해 동국시단은 장강을 이루며 70년대로 굽이쳐간 다.
***이범선 『오발탄』 인기폭발 소설 쪽에서는 이범선을 좌장으로 삼는다.49년에 졸업,55년『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씨는전후 피폐상과 부조리를 풍자하면서도 양심과 인간적 애정을 저버리지 않는 인간상을 그린 전후 최대 작가로 꼽힌다.특히 59년발표,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오발탄』은 사회고발 방송프로 타이틀로 사용될 정도로 50년대 최고의 작품으로 떠올랐다.1938년18세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많은 신문연재소설을 남긴 곽하신,같은해 매일신보를 통해 등단한 최인욱은 이범선의 선 배다.
한편 56년에는 성학원이 조선일보,현 여류문학인회회장인 송원희가「문학예술」을 통해 등단했으며 57년부터 63년까지 6년이라는 기나긴 추천기간을 거쳐 윤정규가 나왔고 김문수는 고교3년때인 58년 충청일보,이듬해 자유신문,그리고 6 1년 조선일보등 3개의 신춘문예를 통과하며 문단에 나온다.김문수는 도덕성 상실의 산업화 시대에도 동양윤리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그 뒤를 김용철.유우희(65년)에이어 한용환(68년)이 잇다가 7 0년 조정래에게 넘긴다.
평론에서는 조연현을 원류로 하여 다양한 물꼬를 트고 있다.35년부터 시를 발표해오던 조연현은 해방과 함께 평론에만 전념,사회과학적 비평이론과 인상비평을 철저히 배제하며 본격비평을 제창하고 나섰다.55년부터 「현대문학」에 연재하다 62년에 펴낸『한국현대문학사』는 한국문학을 이즘이나 연대가 아닌 작품중심.
작가중심으로 살피며 가치판단을 내린 최초의 문학사로 평가받는다.조연현의 평론관은 평문의 속살을 찌우며 한국 평론의 깊이를 가져다 주었다.조연현과 함께 해방직 후부터 정태용도 탐미적 요소가 강한 민족문학론을 내세우며 활발한 평론활동을 펼쳤다.이어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홍기삼이 문학사.이즘.상황.
작품 자체를 포괄하는 폭넓은 평론활동을 펼치며 동국평단을 확고히 다진다.특히 홍기삼 은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며 80,90년대 평단에 괄목할만한 젊은 평론가들을 배출하고 있다.또 67년등단한 김시태도 정치한 시 읽기로 평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국대 국문과 출신 문인들의 문학적 경향이나 색채를 한가지로딱부러지게 말하기는 위험하지만 그들은 전통적 요소가 강한 민족문학 쪽으로 쏠린다.그리고 다른 어느 장르보다 시가 풍성하다.
아무래도 우리의 문학적 전통이 시를 중시하고 불교 역시 말을최대한 아끼는데 기인한듯 하다.또 그들은 문학을 이념이나 경향으로 조각조각 나누는 섹트주의를 거부한다.때문에 시대 상황에 민감히 반응하며 문학의 전령사 역할도 하지 않는 다.선비 정신의 맥을 잇고 있는 동국대 국문과 출신 「문사(文士)」들은 단지 작품 자체의 혼과 향기로서 문학의 정통성을 묵묵히 지켜가고있다.
이경철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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