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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씨 “조풍언에 로비자금 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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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99년 대우그룹 퇴출 과정에서 김우중(72) 전 대우그룹 회장이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68·구속)씨에게 건넨 4430만 달러(당시 시가 526억원)는 정부 최고위층을 상대로 한 로비자금 명목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이날 김 전 회장으로부터 로비 청탁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조씨를 추가 기소했다.

대검 최재경 수사기획관은 “의혹만 떠돌던 대우그룹 구명 로비 시도가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그러나 실제 로비가 이뤄졌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9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대우그룹 구명 로비 의혹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올 3월 미국 도피 생활 5년1개월 만에 입국한 조씨를 구속하면서 관련 사건 재수사에 착수한 지 4개월 만이다.


◇로비 정황은 확인, 실체는 미확인=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4430만 달러의 자금 흐름 추적이 수사의 관건이라고 보고 계좌 추적을 실시했다. 김 전 회장에게서 나온 돈이 조씨가 소유한 해외 법인의 재산으로 증식된 사실이 잇따라 확인됐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이 로비 시도를 부인해 한동안 수사가 진척되지 않았다. 최근 김 전 회장은 심경 변화를 일으켰고, 결국 “정부 최고위층 및 그 측근과 금융 당국 고위 공무원 등에게 로비해 대우그룹의 회생을 도와 달라며 돈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조씨는 로비 의혹을 부인했다. 로비 대상자로 거론된 인사들도 김 전 회장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해외 계좌를 거치는 조씨의 자금 흐름 때문에 검찰의 자금 추적도 끊겼다. 검찰은 조씨의 해외 계좌 거래 내역을 조사하기 위해 스위스와 홍콩 등에 사법 공조를 요청한 상태다.

조사 과정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과 관련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조씨는 4430만 달러 중 2430만 달러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258만 주를 매입했다. 김 전 회장은 “조씨가 보유한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중 30%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남 홍걸씨의 몫인 것으로 알고 지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주식의 실소유주가 홍걸씨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조씨 소유로 확인된 서울 종로구 삼일빌딩의 거래 과정에서도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의원이 조씨에게 100만원권 수표로 송금한 30억원 중 10억원이 빌딩 매매 계약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과거 김 전 대통령과 아들 등에게 경제적 도움을 줬다가 반환을 요구해 돌려받은 돈”이라며 자신의 돈이라고 주장했다. 김홍일씨는 지병이 악화돼 조사가 불가능했다.

◇2200억원대 재산 압류=검찰은 베스트리드 리미티드사(옛 대우개발)의 지분(시가 1100억원 상당)이 김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인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자진 헌납 형식으로 압수했다. 검찰은 김 전 회장을 강제집행 면탈 혐의로 기소했다. 이 회사는 경주힐튼호텔·아도니스골프장·에이원컨트리클럽 등의 지주회사다. 또 김 전 회장이 횡령한 자금으로 구입한 미술품 134점(구입가격 기준 7억8000만원 상당)도 압류됐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된 재산은 김 전 회장의 미납 추징금(17조 9000여억원)으로 집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또 조씨의 범죄 수익을 환수하기 위해 1100억원대의 조씨 재산에 대해서도 보전 조치를 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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