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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판] 콜, 그에겐 적 아니면 동지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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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오후 4시.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옆에 있는 후겐두벨 서점에 갑자기 인파가 몰렸다. 마치 『해리포터와 …』 신간이 나올 때를 방불케 하는 행렬이 서점 밖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서점 안내판에는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가 펴낸 회고록 『Helmut Kohl(1930~1982년)』의 저자 사인회가 열린다는 광고가 내걸려 있었다. 콜 회고록은 불과 한 시간 만에 300권이 팔려나갔다. 앞서 함부르크에서 열린 사인회에서는 두 시간 만에 700권이 동났다.

콜 회고록은 지난 수주간 시사주간 슈피겔의 비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은퇴한 정치인의 회고록이 인기를 끄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사람들이 펴낸 콜의 전기는 주로 권력욕에 사로잡힌 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그래서 콜의 불만이 높았다. 자신에 대한 책이 여러 권 있지만 내용이 정확한 것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콜의 회고록은 이런 배경에서 나오게 됐다. 콜의 자서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6년 『나는 독일의 통일을 원했다』에서는 89∼90년의 독일 통일 직전 상황을 기록했다. 또 『헬무트 콜:나의 일기 1998∼2000』에서는 총선 패배 후 권좌에서 물러난 뒤 불법 기부금 파동으로 겪었던 정치적 고난과 심적 고통을 상세히 적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다룬 기간이 너무 짧거나 내용 면에서 자기변명에 급급해 거물 정치인의 자서전으로는 옹색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펴낸 비망록은 파란 많은 콜의 정치인생을 전부 펼쳐놓은 완결판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는 비망록에서 출생과 유년시절 겪었던 전쟁의 참상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낸다. 또 16세에 정치에 입문해 라인란트 팔츠주 최연소 당대표, 주총리를 거치기까지의 굴곡 많은 정치 역정과 시대상황을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독일 현대사에서 콜 전 총리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도 드물다. 그에겐 ‘통일을 이룬 영원한 총리’라는 찬사가 항상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정적을 무자비하게 내쳤고, 국익보다는 자신의 권력이 최우선 관심사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독선적이고 자신이 항상 옳다는 주장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혹자는 콜의 사고방식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닮았다고 꼬집기도 한다. “세상에는 적 아니면 친구밖에 없다”는 이분법적 발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중간적인 입장이라는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회고록도 그런 콜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는 비망록에서 정적이던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전 바이에른주 총리와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에 대해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나이 탓일까. 시퍼렇게 날을 세웠던 이전과는 달리 비난의 강도가 다소 누그러들었다. 부분적으로 정치적인 과오도 인정했다. 후일 녹색당 창당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같은 당(기민당)소속 정치인 후베르트 그룰스를 당시 과소평가했다며 자신의 판단 미숙을 후회하기도 했다.

회고록에서 눈물을 자아내는 극적인 요소를 찾아보긴 힘들다. 그렇다고 새롭게 공개하는 비화가 담겨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저술이다. 콜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역사학도답게 회고록에 사료로서의 가치를 씌우고 있다. 특히 그가 야당 당수로서 지켜봤던 70∼80년대 동서 냉전 시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의사결정 과정과 서유럽 안보 정책에 대한 기술은 관련 전공자의 연구문헌으로서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그런 점에서 “내가 걸어온 인생역정을 사실 그대로 남긴다는 차원에서 책을 내게 됐다”는 그의 주장은 공감을 얻는다. 콜은 82년 집권부터 총리 재임 기간의 주요 사건들을 다룰 회고록 2부도 연내 출간할 예정이다.

베를린 = 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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