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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성] 日 19세기 군비증강매춘이 ‘효녀’였다

중앙일보

입력

공창(公娼), 즉 국가가 관리하는 매매춘의 뿌리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전투병들이 매독으로 비실거리자 나폴레옹에게는 전투력 보강이 발등의 불이었다. 여성 접촉은 눈 감아주면서 성병을 막을 묘안으로 뽑은 카드가 바로 공창. 파리 경찰청에서 공창 등록을 받고, 여성들에게는 강제 성병 검진을 의무화한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성매매도 국가가 개입하는’ 근대국가의 첫 모델로 규정하는데, 이후 공창제가 유럽 전역에 수출된다. 눈여겨볼 것은 일본의 움직임. 메이지 정권은 이 제도가 ‘남는 장사’라고 판단해 공창제를 서둘러 수입했다.『성의 역사학』이 들춰낸 이런 사실(史實)은 현재까지도 뜨거운 쟁점이다. 일본군 위안부를 둘러싼 일본 당국의 공식 입장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공창이 아닌 사창(私娼)이라는 것, 따라서 국가 보상 의무는 없다고 해왔는데, 이 입장을 이 책 저자가 정면에서 뒤집는다. 꼼짝 못할 물증도 수두룩하다. 공창제를 도입한 1872년 대장성 공시(127호) 같은 문건이 그것이다. 메이지 정권은 19세기 말 매매춘 여성 4만명이 활동했던 공창에서 떨어지는 세금(‘잡수입’으로 분류했다)을 재원으로 군비경쟁에 열을 올렸다. 공창제와 제국주의 일본은 ‘샴 쌍둥이’였던 셈이다.

공창제 도입이 “문명개화의 제도” “외국의 하사품”이라고 선전됐지만 일본 매매춘 여성들은 기겁을 했다. 경찰이 지켜보는 공개적 분위기에서 치러진 강제적 매독 검사가 주는 수치심에 자살하는 여성도 속출했다. 알고 보니 그건 근대 초 한국 여성들의 비극이기도 했다. 조선통감부는 러·일전쟁 직후 조선 땅에 공창제를 실시했다. 당연히 성병검사도 실시됐고, 이때 대한매일신보는 그 제도를 “금수와 같은 학대”라고 고발했다(106쪽).

『성의 역사학』에 보이는 이런 내용은 일본군 성의 노예란 1930년대 이후 돌발현상이 아니라 근대 군국주의와 함께 시작됐음을 말해준다.

이 책은 일본에서 1997년에 출간됐다. 올해 마흔 다섯의 여성학자인 저자는 ‘일본 사회의 내부 고발자’인 셈인데, 그는 일본 우익들에 기피인물이다. 우익 네티즌들은 ‘매국노’ 명단에 교포소설가 유미리 등과 함께 그의 이름을 올려놓고 공격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책에서 한국 역사에 대한 연대의식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효재 등 한국 여성학자들에서 받은 학문적 암시도 털어놓고 있고, 위안부 출신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활동에서 “강한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책의 한국 관련 내용을 집중적으로 소개했지만, 이 책은 실은 성과 생식까지 국가가 관리하는 역사를 조망한 학술서. 섹스와 출산문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근대국가의 특징이라는 게 서술의 기조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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