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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구한말 위기상황 한·중·일 관점서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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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고종시대의 리더십
오인환 지음, 열린책들, 444쪽, 2만원

풀어가는 데에도 여러 방법이 있다. 낱말이나 어구를 푸는 것은 주석(注釋), 문장 등을 그 사람의 논리에 따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해석(解釋)이다. 나름대로의 주제의식에 따라 텍스트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풀어가는 행위에 자신의 주제의식을 얹는다는 점에서 천석(闡釋)이다.

책은 ‘위기’라는 관점에서 구한말의 고종 시대를 이 방식으로 읽고 있다. 하나의 주제로 당대의 여러 현상을 풀어 헤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지만, 나름대로 방대한 사료와 연구 실적을 소화하지 못하면 낭패에 흐르기 쉽다. 책은 그러한 착오에서는 일단 비켜 섰다. 관련 연구실적을 비롯한 직·간접 사료를 훑어간 노력이 역력하다.

저자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통성을 고종 시대에서 직접 이끌어내고 있다. 국가의 법통이라는 문제를 넘어서 “강력한 민족주의, 민족성이 승계되고 있고 유교 전통이 전수되고 있으며 언어·문화·풍속 등 여러 분야에서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더 나아간다. “대외적으로 볼 때도 백여 년 전의 한반도 상황과 유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누르고 있는 것은 외부에서 형성되는 강대국과 그로 인한 척박한 국제환경 때문이라고 본다.

언론인이자 김영삼 정부 때 최장수 장관을 지낸 저자의 장점은 끈질긴 문제의식이다. 왜 고종 시대는 한·중·일 중 근대화 추진의 지각생으로 전락했는가, 강병책을 부르짖으면서도 왜 당시에는 성공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다.

이런 문제들을 자국 역사 중심이 아니라 한국과 중국·일본 동양 3국의 동시대사적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접근했다. 저자는 한반도를 과점하려는 일본과 중국 제국 첨병들이 보이는 역할을 종합적으로 서술했다. 1차 사료를 공부한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제대로 모자이크 한 결과다.

위기의 대한제국을 돌아보는 종합적 서술이다. 논문 등 학술영역에서만 많이 다뤄져 접하기 어려웠던 구한말의 위기 상황을 한눈에, 그리고 입체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세계 11위 무역대국으로 올라섰다고는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누수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요즘의 대한민국. 그 위기의 그림자를 과거에 비춰보는 것 또한 의미 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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