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북부 지역의 유전 시설. 20004년 12월 20일 ~2007년 2월 28일까지 바그다드에서 보낸 800일 간의 경험을 『오일전쟁』에 쓴 장기호 전 이라크 주재 대사는 “3~4년 앞을 내다보며 이라크와의 실리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사진]
장기호 지음, 중앙북스, 248쪽, 1만2000원
“정말 답답할 노릇입니다. 최소한 이라크 북부라도 한국 기업의 진출을 허용해야 하는데….”
2005년 4월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열린 이라크 재건 박람회에서 만난 장기호 당시 바그다드 주재 한국대사는 매우 안타까워했다. 한국 기업의 이라크 진출을 돕고자 바그다드에서 육로로 인근국인 요르단까지 달려온 그다. 당시 카이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필자는 이라크를 아홉 번이나 다녀오면서 장 대사와 전쟁 이후의 실리외교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었다.
이라크 내 한국 기업의 진출을 최대 임무로 꼽았던 장 대사가 그 답답함을 책으로 펴냈다. 『오일 전쟁』은 800일 이라크 근무 기간의 경험을 피부에 와 닿게 서술한 책이다. 혼란의 이라크에서 근무한 한국 대사의 체험과 고뇌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끊이지 않는 폭력사태 속에서 대사관 내 공터에 마련된 족구장이 유일한 체력단련 시설이자 공포를 이기는 수단이었다. 차량폭탄테러와 미사일 공격을 피해 정부 관계자를 만나고 이라크 기업인을 만나야 했던 상황을 덧붙임 없이 필자는 설명했다. 비밀 벙커 안에서 외교단 회의가 열릴 수밖에 없었던 이라크의 긴장도 책 전체를 흐른다.
이라크 현지에서 활동한 우리 외교단장이 제공하는 이 책의 정보는 남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라크 전쟁 직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그래픽 자료까지 동원해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설파한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장관의 ‘거짓’과는 크게 다르다. 미국 등 서방의 왜곡된 주장이 아니라 ‘이라크 안에서 직접 살펴본’ 우리의 시각이다. 죽음을 넘나드는 사지 이라크에서 대사로 근무하며 체득한 경험을 전하는 일종의 정보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현재도 이라크 진출과 실리외교를 위해 일하고 있다. 한·이라크 석유개발 컨소시엄과 대한건설협회 소속 이라크 개발 프로젝트 컨소시엄의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35년 이상의 외교 경험을 살려 이제 한국과 중동 간 경제협력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의 대사로서의 역할이 결실을 맺은 걸까. 최근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자치정부와 한국 기업과의 협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26일에는 국내 민간 건설사와 한국석유공사 등 정부기관의 컨소시엄이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와 초대형 유전개발권을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이라크에서 날아들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중동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