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대표 부진에 책임” … 허심과 엇박자에 발 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이영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기술위원 전원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한 경기력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 위원장은 4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회의를 마친 뒤 “지금 한국 축구는 베이징 올림픽과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이런 시기에 훌륭하고 유능한 분이 오셔서 한국 축구를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호곤 축구협회 전무는 “예전부터 이 위원장이 사퇴 고민을 많이 해왔다. 특히 지난해 8월 핌 베어벡 감독이 물러날 때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축구협회가 만류했는데 이번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먼저 의사를 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기술위원 총사퇴 소식을 접한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함께 회의하면서도 사퇴 얘기는 전혀 없었고 앞으로 잘해 보자는 분위기였다. 그분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번 총사퇴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당시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에 대해 기술위가 책임진 모양새지만 본질은 이운재 사면 요청으로 촉발된 파워게임에서 허 감독이 이긴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허 감독은 “요르단과의 홈경기에서 골키퍼의 실수로 주지 않아도 될 점수를 줬다”면서 음주 파동으로 징계 중인 이운재 사면건을 공식 요청했다. 그러나 여론이 나빠지자 허 감독이 “사면 요청을 한 적 없다”고 발을 빼는 바람에 이 위원장과 갈등을 빚었다.

2005년 12월 취임한 이 위원장은 2006 독일 월드컵, 지난해 세계청소년선수권(U-20, U-17)과 아시안컵에서 잇따라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또한 기독교 신자인 이 위원장이 대표팀 내 종교갈등을 일으켰고, 독일 월드컵 후 모든 책임을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전가시켰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축구계에서는 이번 총사퇴를 계기로 기술위의 발전적인 해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상근직이 아니라 상근하면서 전문적으로 대표팀을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을 모아 위원회가 아닌 기술국으로 재편하자는 주장이다. 대표팀을 경험한 지도자들과 세계 축구 흐름을 짚어줄 수 있는 분석가, 심리전문가 등으로 기술국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표팀을 지원할 총책임자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비전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는 인사가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위원은 총사퇴했지만 허 감독도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이 위원장과 기술위원들이 사퇴하면서 지적한 ▶느린 공수 전환 ▶집중력과 정신력 저하 ▶밀집수비 대처 능력 미달 ▶박주영에 대한 의존 ▶선수교체 실패 등은 최종 예선 통과를 위해 허 감독이 곱씹어야 할 문제점이다. 독선적인 언행으로 기술위와 갈등을 유발한 허 감독이 모든 책임을 기술위에 떠넘기고 빠져나가려는 듯한 모양새는 좋지 않다.

허 감독은 “기술위원들의 지적에 전반적으로 수긍한다. 앞으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1월 19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경기를 치른 뒤 내년 2월 11일 이란 원정까지 경기가 없는 시기에 합숙훈련을 하고 싶다는 뜻을 축구협회에 전달했다.

최원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