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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어휘 풍성함 맛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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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장동건·유오성의 대결이 빛났던 곽경택 감독의 흥행작 ‘친구’(2001년)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다. 총 16부작으로 제작될 드라마는 ‘친구, 그 못다 한 이야기’. 역시 곽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다. 국립국어원(www.korean.go.kr) 홈페이지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친구를 입력하면 비슷한말이 세 개 뜬다. ‘벗’ ‘동무’ ‘친우(親友)’다.

과연 그것밖에 없을까. 같은 친구라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단어를 쓸 수 있다. 2005년 타계한 어휘학자 김광해 교수(전 서울대 국어교육과)는 2000년 발간한 『비슷한말, 반대말 사전』에서 유의어 7개를 제시했다. ‘교우(交友)’ ‘붕우(朋友)’ 등을 추가했다.

10월 출간 예정인 『우리말 유의어 분류 대사전』에선 총 23개로 늘어난다. 추가될 단어는 모두 한자지만 우리말의 어휘가 그만큼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별표 참조). 현재 분류·색인 작업이 완료된 상태다.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80)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한 사물에 가장 적합한 단어는 하나만 있다는 주장)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각 단어의 뉘앙스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말 유의어 분류 대사전』은 현재 인터넷(www.wordnet.co.kr)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종전에도 『우리말 분류 사전』(남영신), 『우리말 갈래 사전』(박용수)이 있었지만 이번 사전은 한국어 각 단어의 비슷한말·반대말·상위어·하위어 등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사실 사전 편찬은 모든 학문의 ABC다. 각 단어의 연관성과 계통을 정리한 우리말 사전의 발간은 향후 정확한 글쓰기는 물론 엄밀한 사고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에서도 2004년 『우리말 글쓰기 연관어 대사전』을 낸 적이 있다.

이번 사전은 국가기관이나 국어학회가 아닌 일반 출판사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비슷한말, 반대말 사전』을 냈던 고(故) 김광해 교수의 동생 김기형(기업 컨설턴트)씨가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작업을 진행했다. 김기형씨는 2000년 출판사 ‘낱말’을 차리고 형의 사전 편찬을 지원해왔다.

김씨는 출판사 안에 어휘정보처리연구소를 설립, 국어학자 5명과 함께 이번 사전을 편찬해왔다. 최종 감수는 심재기 전 국립국어연구원장(현 서울대 명예교수)이 맡았다. 이번 사전의 표제어는 19만여 개. 관련어는 200만 단어에 이른다. 한 단어의 검색만으로 유의어와 반의어를 많게는 100여 개까지 볼 수 있도록 했다. 2000년 나온 『비슷한말, 반대말 사전』의 표제어는 2만여 개였다. 그만큼 사전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이번 사전의 또 다른 특징은 단어별 난이도를 일일이 부여했다는 점이다. 역시 고 김 교수가 발표했던 ‘국어교육용 등급별 어휘 연구’ 결과를 기초로 각 단어의 난이도를 총 9단계로 구분했다. 비슷한 단어 중에서도 쉬운 말, 어려운 말을 골라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출판사 측에선 각 단어의 ‘계통도’도 완성해 놓았다. 예컨대 봇짐장수는 일반명사→인간→개체성→역할→직업→업종별→상공업→상인→도붓장수→보부상 등 10단계의 ‘상위어’를 거쳐야 한다.

김기형씨는 “지난 8년간 인건비만 10억원 넘게 들어갔다”며 “이번 사전이 우리말을 보다 풍성하게 사용되는 데 기여하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조남호 부장은 “외국에선 오래전부터 유의어 사전이 활발하게 출간됐다”며 “수익성이 별로 없는 사전을 낸 출판사 측의 노력을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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