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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북한>2.김일성은 살아있다 上.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95년 4월 평양에서 기념품 파는 노점상과 몇 마디 나눴다.「김정일(金正日) 비서」라는 호칭을 무심코 넘긴 그가 「김주석」이라는 대목에서 대뜸 정색을 했다.「김주석이 아니라 위대한수령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 노점상은 김일성(金日成)이 사망했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재미 저술가曺和裕씨) 작년 하반기 방북했던 동포들에 따르면 김일성 애도 열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역시 시간이 약이라는것이다.그러나 시간이 베푸는 망각의 힘이 반드시 김정일체제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빨치산 경력」을 내세우며 담금질해 온 「나라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간고분투」의 정신까지 느슨해지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95년 외부의 시선이 북한의 수해참상과 주민구호 등에 묶여있던 동안 평양에서는 김일성이 무대위에 「부활」해 대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북한 지도층은 고조된 「애도심리」를 단순한 감상차원에 버려두지 않고 체제적 충성심으로 연결시키 는 작업을 치밀하게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 11월30일 평양에서 연극 『소망』을 봤던 한 중국동포의 증언.
『공연장인 국립연극극장은 1천5백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열기로 터질 듯했다.연극주제는 평양외국어대학 여대생이 그 좋다는무역분야 진출을 마다하고 「수령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기 위해」 벼 신품종 개발사업에 헌신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일성」이 등장하자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듯 숙연해졌다.눈을의심할 정도로 김일성을 빼다박은 그는 예의 「걸걸한」 목소리로교시를 시작했다.
「농민들이 이밥에 고깃국 먹도록 열심히 일해 김정일 동지만큼은 다시 나처럼 논두렁 길을 걷지 말게 해야 한다」,「김정일동지가 인민들을 위하느라고 밤늦도록 잠을 못잔다.그래서 나에게 올 때 피곤이 가시지 않아 핏발이 선 눈을 보이지 않으려고 색안경을 쓴다」,「김정일동지가 다시 수척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농민들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일성은 죽은 뒤에도 저승으로 가지 않은 셈이다.「영생」하는 몸으로 무대에 되돌아와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하라고 다짐받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연극이 끝날 즈음 다시 등장했다.한밤중에 신품종 개발에 몰두하는 주인공 앞에 나타나 육종에 성공해 대수확을거두도록 격려한 뒤 손을 흔들며 천천히 퇴장했다.그러자 마을 사람역을 맡은 수십명의 배우들이 그를 배웅하면서 만세를 부르기시작했다.
그러자 관중들도 박수와 만세로 호응했다.이 때부터는 무대의 위아래가 하나로 돼버렸다.1천5백여명이 내지르는 외침과 만세소리,울음소리,환호성으로 공연장은 쇳물이 끓는 것같았다.관객들의얼굴은 땀과 눈물로 번들거렸다.「김일성이 죽었다 」는 사실이 환상처럼 느껴졌다.항일투쟁시기를 다룬 「피바다」같은 기존의 연극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중국동포) 이 연극은 그날 평양공연을 끝내고 바로 전국순회공연에 나섰다고 했다.「예술의 천재」 김정일이 이 연극을 통해 노리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죽은 김일성의 권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것,그리고 당면한 식량난 해 결을 위해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고취하는 자력갱생방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또다른 중국동포는 『북한은 김일성 숭배열을 이용해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경험과 비교했다.
『지금 북한은 문화혁명이 끝나기 1~2년 전의 중국과 비슷한면이 있다.그 때 중국인들 사이에는 「4인방」에 대한 막말이 나오기 시작했다.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먹을 것은 있었다.그런데도 민심이 동요한 것은 「개인숭배」를 정치적 억압으로 느꼈기때문이다.그런 민심을 업고 등장한 것이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지금 북한에도 그런 불만이 없다고 말못한다.그러나 김일성 신화가 무너지지 않는한 50년에 걸치는 「개인숭배」가 정치적 억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 을 것이다.』 개방압력이 높아갈수록,그리고 경제난이 가중될수록 오히려 김일성 신화는 강화되고 그에 따라 북한체제와 함께 김일성은 「영생」하는 구조다.
①좌절,긴장 그리고 기대 ②金日成은 살아있다 ③효자둥이는 충성둥이 ④.장군님'의 軍心 달래기 ⑤식량난의 허실 ⑥.수용소'식 경제특구 ⑦金正日 치하의 민심 ⑧체제유지 자신감 있나 ▶중국=전택원 부장 ▶일본=방인철 부장 ▶美서부=안희창 기자 ▶독일=유영구 전문기자 ▶美동부=김용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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