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소리없이 사라진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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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新都內). 실제 지명이다. 계룡산 아래 자리 잡은 분지로 조선 초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자 ‘새 도읍’이란 뜻으로 이렇게 이름 지었다. 반론이 많아 실제 도읍은 한양이 됐지만 말이다. 신도안은 ‘계룡산 문화’로 일컬어지는 풍수도참설, 민족종교, 신종교 등의 발원지다. 이 종교성 강한 땅엔 일제 시대 이래 수 백 개의 종교 단체가 생겨났다. 1984년 육해공 삼군통합본부인 계룡대가 주둔하면서 이곳 주거시설과 종교시설은 대부분 철거됐다.

서울 신사동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선 이 신도안에 대한 45분짜리 다큐 형식의 영상물이 상영 중이다. 박찬경(43)씨의 개인전 ‘신도안’이다. 이 중편 영화는 신도안에 대한 기록사진, 70년대 미신타파를 위해 만든 정부 영화, TV 영상 등과 작가 자신이 석 달간 촬영한 것을 엮은 팩션, ‘향토 판타지’다.

임진왜란, 일제강점, 6·25 등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민중은 이곳으로 피해 그들만의 종교 공동체, 이상 사회를 만들었다. 그래서였나, 이곳은 때마다 핍박받았다. 유교가 국가 이념이던 조선시대에도, 일제 강점기를 지나 근대화가 한창이던 때도 이곳의 전통 종교문화는 지배층에 대한 반발 혹은 미신으로 치부됐다. 전시장의 영화와 관련 모형, 스틸 사진(사진) 등은 근대화를 향해 달려온 우리의 뒷전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들, 혹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되 존재감 없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을 담았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신도안은 무슨 의미일까? 박씨가 전시실 벽에 연필로 적은 다음 구절이 이를 설명해 준다.

“동시대를 사는 어떤 여인이 컴컴한 밤중에 산신기도를 하러 깊은 산속을 거닐 때, 대체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아마 차를 장만하거나, 유명해질 궁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도 가끔은, 노송과 기암괴석과 산이 보이는 꿈을 꾼다.”

2004년 에르메스 미술상을 수상한 그는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다. 전시는 다음달 17일까지다. 02-544-7722.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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