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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주택 공급정책 확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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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경우 시장 왜곡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올해부터 2020년까지 수도권의 가구 수는 190만 가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중 1~2인 가구는 199만 가구, 3인 가구는 46만 가구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4인 이상 가구는 55만 가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990년대의 일본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본은 늘어나는 소형주택 수요를 외면하고 중대형 위주의 주택공급에 치중하는 바람에 부동산 침체를 부채질했다.

시장원리에 따르는 민간택지야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러나 공공택지까지 소형주택이 줄어드는 것은 정부가 미래 주택수요를 등한시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정부 사업을 대신하는 한국토지공사는 수익을 위해 땅을 팔아치우는 일에 급급했다. 대한주택공사도 수익을 올리기 위해 중대형 아파트 사업에 적극 뛰어든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택정책이 돈없는 무주택 가구보다 부유층을 위한 주택 공급에 치우치면서 80~90년대 방식인 총량적 공급의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택지개발이나 주택 공급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소형주택의 부족과 서민 주거의 불안 현상은 한층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소형주택과 임대주택을 중시하는 쪽으로 토지매각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토지개발 주체와 주택사업 주체가 나뉘어져, 토지 개발자는 수익 위주로 토지를 팔 뿐 주택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토지 공급자(주로 토지공사나 지방자치단체)는 개발이익을 위해 건설업자가 선호하는 중대형 아파트 용지를 주로 공급하고 소형주택 공급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서민주택을 공급해야 하는 주택공사마저 소형·임대 아파트보다 수익이 큰 중대형 주택 공급을 선호해온 측면이 많다.

택지 개발은 정부가 땅을 수용하기 때문에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공공적 관점에서 추진되는 것이 맞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싸게 집을 공급할 때 택지 개발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택지 공급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주택·택지 공급체계를 일원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외국의 경우를 보자. 영국은 일찍부터 주택·토지 공급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택지 개발에서 주택 공급, 입주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중앙정부가 통제해 왔다. 일본도 80년대 초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자 주택도시공단을 세워 택지 개발 사업과 주택 공급 기능을 합쳤다.

우리나라도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공급체계의 초점을 맞춰 택지 개발의 공공성을 살려나가야 한다. 그래야 늘어나는 1~2인 가구나 소형주택 수요를 해소하고 서민의 주거 불안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택지 개발을 통해 얻는 수익을 주거 복지와 서민주택 안정을 위한 재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개발이익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과도한 개발이익을 무주택 서민에게 돌려줌으로써 택지 개발의 공공성도 높일 수 있게 된다. 도시 및 택지 개발은 5~10년 뒤에 완성되는 장기 사업이다. 따라서 눈앞의 수익보다 철저히 미래의 주택 수요에 입각해 계획돼야 한다. 수익성 위주의 근시안적인 택지 개발 방식을 한시바삐 중단시켜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용석 도시통계표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