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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747’의 굴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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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둘 중 어떤 남자를 택할 것인가?

필자가 여자라면 뒤의 남자를 택했을 것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세상에서 쉽게 장담을 해버리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의 대사가 구혼의 정형이 되어버린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애라는 것이 원래 현실을 떠나 꿈속을 헤매야 더 짜릿한 법이고, 무엇보다도 다른 경쟁자들이 모두 뻥을 치고 있는 마당에 혼자 진실해 봤자 기가 허해 크게 되지못할 사람이란 말만 듣기 십상이다. 생계의 책임을 부부가 함께 짊어져야 하는 세상에서 이러한 구식 구혼 방법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시장이 해야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전히 구식이 대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7%의 성장률을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이회창 후보가 6%를 제시해 더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서”라고 고백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겨울 ‘747’의 구호로 국민의 마음을 잡았다. 우리 경제가 10년 동안 매년 7%의 성장을 하게 만들어 10년 뒤에는 1인당 국민소득을 2배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지금 그 747호는 활주로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격납고에 갇혀 있다.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최악의 날씨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국민들이 구혼자의 애교로 그냥 넘어가 줄 것 같지 않다. 원래 경제력 때문에 한 결혼이었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호강은커녕 손에 주부습진이 생길 판이니 화가 날 만도 하다. 처음부터 사기가 아니었나 의심도 해보고, 혹시 결혼을 물릴 수 있는지 생각할지도 모른다.

석유와 원자재 가격이 모든 책임을 떠맡을 일이 아니다. 책임의 상당 부분은 정권이 바뀌면 우리 경제가 훨훨 날 것이라며 헛된 믿음을 불어넣은 쪽에 있다. 이들은 지난 두 정권의 경제 성적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비하했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2000년에서 2006년 동안 연평균 4.5%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세계 170여 개 국가 중 35위에 해당하는 양호한 성장률이었고, 우리보다 잘한 나라는 거의 전부 개발도상국이었다. 한국의 발전 단계에 도달했고, 인구가 500만 이상인 국가에서 7% 이상의 성장률이 10년 이상 유지된 적은 없었다. 공약은 애당초 가망이 없는 것이었다.

또한 성장률이 높아지면 양극화 문제는 저절로 개선될 것이라는 예언도 곱씹어봐야 한다. 중국의 약진과 함께 제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제조업의 고용 능력이 급속히 위축되고 있다. 그 와중에서 잉여인력은 도소매·음식·숙박업에서 생계를 건 전쟁을 벌이고 있고, 금융·사업서비스·통신 등의 고급 서비스업에서는 고학력자의 소득이 치솟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장이 어떻게 양극화를 저절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일까?

설상가상으로 현 정권은 두 가지 중대한 잘못을 범했다. 첫째로 장기적으로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할 경제개혁의 효과를 몇 달 안에 나타나는 것처럼 선전해 화를 자초하였다. 둘째로 레이더를 지켜보는 일을 게을리하였다. 곡물 가격이 본격적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물론 유가가 이렇게까지 오르리라 예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유가가 단 1년 만에 배럴당 50달러에서 100달러로 뛰어 오른 것은 인수위가 한참 활동하던 올해 2월의 일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1월 ‘세계경제전망’에서 세계경제의 성장률을 지난해보다 1%포인트 정도 낮추어 잡았고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4% 중반 이하로 예측하고 있었다.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가 활주로가 꺼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권이 출범한 지 넉 달이 지났을 뿐이다. ‘747’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집권 기간의 반은 ‘잃어버린 10년’보다 더 낮은 성장을 할 각오와 준비를 해야 한다. 오만과 안이했음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고통분담을 호소해야 한다. 저소득층의 분노는 원칙을 무시한 대증요법이 아니라 제도화된 양극화 대책으로 달래야 한다. 그래야 물가를 통화긴축으로 통제할 정치적 공간이 생긴다. 물가와 양극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곡예에 실패한다면 정권도 경제도 모두 추락할지 모른다.

송의영 서강대·경제학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