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목사등 7명 피랍 5시간] "한국인은 우리 친구" 석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8일 이라크에서 한국인 목사 등 7명이 무장괴한에 납치됐다 풀려난 사건으로 현지 교민.체류 국민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비정부기구(NGO) 요원 두명이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 시아파 민병대원에 납치됐다 석방된 지 이틀 만에 벌어진 사건이다.

◇미군 스파이 아닌 것 확인한 뒤 누그러져=허민영 목사 등 7명이 납치된 것은 8일 오전 10시30분(현지시간)쯤 바그다드 서쪽 250㎞지점의 고속도로였다. 이들은 전날 오후 10시30분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GMC 밴형 트럭 두대에 나눠 타고 국경을 건넜다. 무장세력들은 총으로 위협하면서 許목사 등 7명을 끌어내렸다.

이 순간 뒤쪽 차량의 안쪽 구석에 앉아 있던 김상미 목사는 이라크인 운전사가 기지를 발휘해 급속도로 내달리면서 현장을 탈출해 바그다드에 먼저 도착했다. 金목사는 곧바로 주이라크 한국대사관에 피랍 사실을 알렸다.

한국대사관 측이 무장단체의 정체와 납치 배경을 파악하느라 한창 분주하던 오후 3시30분, 일행은 바그다드 시내에서 풀려났다. 사건 발생 5시간 만이다. 무장괴한들은 자신들을 무자헤딘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본인 3명을 납치했다고 주장하는 '무자헤딘여단'인지 일반적으로 이슬람 전사를 지칭하는 무자헤딘을 의미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괴한들은 목사 일행의 눈을 가리고 차로 10분 거리인 곳에 가 직업을 물었다. 목사 일행은 의사와 간호사라고 말해 괴한들을 안심시켰다. 괴한들은 다섯차례나 거처를 옮기는 과정에서 미군 스파이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뒤 "한국인은 우리의 친구다"라며 호의적으로 대했다. 생수를 권하고 쉴 곳과 음식을 권하기도 했다.

목사 일행은 9일부터 이라크 북부 모술 인근의 니느웨에서 열리는 선교대회 참석차 지난 5일 한국을 떠나 6일 요르단 암만에 도착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주요르단 대사관의 제지를 받았다. 대사관 측은 "현재 치안상황이 나쁘니 입국을 포기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라크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대사관 측을 안심시킨 뒤 이라크행을 강행했다.

◇긴박하게 움직인 정부=피랍 사태가 터지자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9일 오전 통일.외교통상.국방부 장관과 국정원장이 참석하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일정이 잡혔다. 자정이 넘어 일행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팽팽했던 긴장이 풀렸다.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파병 원칙이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게 정부 당국의 확고한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시민단체와 야당 일각을 중심으로 파병 철회론이 확산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무엇보다 한국인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여론이 악화될 수 있는 상황을 걱정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는 9일 파병지 결정을 위해 이라크로 현지 조사단을 파견한다. 파병부대와 민간인의 안전이 파병지 결정의 제1변수라고 한다.

외교부는 128명의 현지 체류자 중 필수불가결한 인원을 제외하고는 이라크 사태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인접국에 대피하거나 귀국하도록 권고하라고 주이라크 대사관에 지시했다.

오영환.채병건 기자,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