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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준비 없는 로스쿨, 재앙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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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내년 3월 문을 열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대한 관심이 높다. 얼마 전 마감된 법학적성시험(LEET) 원서 접수 결과 1만960명이 몰렸다. 입학정원이 25개 대 2000명임을 감안하면 평균 5대 1이 넘는 셈이다. 우리보다 앞서 2004년 출범한 일본 로스쿨의 첫해 경쟁률(13대 1)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시쳇말로 ‘인기 짱’이 아닌가. 지원자 가운데는 머리 희끗희끗한 40, 50대 지원자도 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로스쿨이 그런대로 인기몰이에 성공하자 이미 예비인가를 받은 대학들은 정원이 너무 적다고 불만이다. 유치에 실패한 대학들은 인가 대학 수를 더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예비인가에서 탈락한 몇몇 대학과 교수들은 ‘지방 균형’이 인가 기준에 포함된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냈다.

그러나 지금의 인기에 현혹돼 정원과 인가 대학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위험하다. 인기가 언제 식을지 모르는 데다 로스쿨 낭인(浪人)을 양산할 수 있어서다. 법무부가 로스쿨 졸업 후 5년 내 3회에 한해서만 변호사시험에 응시하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그 실효성은 의문이다. 로스쿨 졸업생이 5년간 변호사시험에 응시했다가 실패했다고 가정해 보자. 대학 학부 4년에 로스쿨 3년, 군복무 2년(2014년부터 18개월)을 감안하면 그는 이미 30을 훌쩍 넘긴 나이다. 그 나이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응시 횟수 제한은 위헌이란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경우 도입 첫해와는 달리 로스쿨 인기가 날로 떨어지고 있다. 지원자 수가 최근 4년 연속 감소하더니 올해는 74개 로스쿨 중 62.2%인 46개교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졸업생의 사법시험 합격률도 2006년 48%에서 지난해 40.2%로 떨어졌고 올해는 30%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자진해 정원 감축을 신청하겠다는 대학이 1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비싼 등록금 부담도 풀어야 할 숙제다. 국내 주요 사립 대학들이 책정한 연간 등록금은 1860만~2240만원이다. 여기에다 3년간의 생활비와 교재비를 합하면 1억원 이상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나마 학원 수강료 등 사교육비를 뺐을 때 얘기다. 연간 등록금만 비교해도 일본의 로스쿨(국립 100만 엔, 사립 200만 엔 전후)과 맞먹는다. 국민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일본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고 볼 수 있다. 해당 대학들은 모집 정원이 적어(학교별로 40~150명) 부득이 등록금을 높게 책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서민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학비다. 이러니 ‘귀족 학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경제적 이유로 저소득층 자녀들의 법조계 진출 길이 막혀버린다면 기회 균등이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장학금과 금융기관의 학자금 대출제도다. 그럼에도 상당수 대학들은 시설 투자와 교수 확보 등 외형적인 준비에 집중할 뿐 학자금 지원 방안에 대해선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서울대가 150명 중 57명(38%)에게 전액 및 반액 장학금을 주겠다고 밝히는 등 몇몇 대학이 장학금을 약속하고 있는 정도다. 그렇다고 대학 측에 장학금 지급을 늘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는 대학들이 학교 재정 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그만이다. 다만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린다면 더 많은 학생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장학금만으론 학비 지원에 한계가 있다. 장학금 받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 필요한 게 금융기관과 연계한 학자금 대출제도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부작용과 사회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고액의 빚쟁이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준비 없는 로스쿨은 대학에든, 개인에게든 기회가 아닌 재앙이 될 수 있다. 정부와 대학이 재앙을 최소화할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할 때다.

신성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