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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만 노·사·정 대타협, 경제 전체로 확산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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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9.11 테러가 터진 지 1년 남짓 지난 2002년 9월 29일 미국에서는 또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연간 3200억달러에 달하는 수출입 물동량을 처리하는 미국 서부항만이 대대적인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서부항만 사용자 측인 태평양해운협회가 비용 절감을 위해 정보입력 작업을 담당하는 사무직원의 인력절감을 추진하자 노동자 측인 국제항만창고노조가 이 방침에 반발해 태업에 돌입하고, 사용자 측은 직장폐쇄로 맞서면서 LA항 등 미국 서부해안의 29개 항만이 11일간 전면 봉쇄되는 상황을 맞게 됐다.

결국 인원감축 대신 근로자의 임금 인상에 합의함으로써 파업사태는 마무리됐으나 이로 인한 피해는 엄청났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11일간의 파업에 따른 손실액이 22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 사건은 항만 마비가 국가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의 경우도 지난해 1, 2차 화물연대 운송거부 사태 때 항만에서의 화물 반출입률이 60% 이상이었음에도 수출입 피해가 8억8000만달러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출입 화물의 99.7%가 항만을 통해 처리되고 있다. 만약 항만 전체가 마비될 경우 경제적 손실이 하루 8억9000만여달러(약 1조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우리 항만의 노사정이 한자리에 모여 항만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와 협조를 다짐하는 '노사정 항만평화 선언식'을 열었다.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과 한국항만물류협회.해양수산부는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을 위해 항만물류산업이 앞장설 것을 다짐하면서, 이를 위해 항만 노사가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기로 뜻을 모았다.

항만 노사정은 최고의 서비스 제공 등 항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최대한 협력하고 항만노동자의 고용안정과 복지 향상, 지속적 능력개발을 위해 공동 노력하며 모범적 노사관계를 통한 대외신인도 제고와 항만 세일즈 활동도 적극 전개하기로 했다. 아울러 항만 노동제도에 관한 기존 노사정 합의사항을 존중하고 항만 현대화에 협력하는 한편 하역요금 인상률 4.5%에 준해 전 항만에서 5월 중 2004년도 임금협정을 체결하는 방안에도 전격 합의했다.

항만의 경쟁력을 측정하는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무엇보다 수준 높은 항만 노동서비스 제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곧 안전한 항만에 대한 약속이며, 항만 효율화와 생산성 제고의 기본이다.

지금 동북아의 주요 항만은 말 그대로 전쟁 중이다. 엄청난 배후물동량과 신속한 항만시설 확충을 무기로 우리 환적화물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해 가고 있는 중국의 위협과 수퍼 중추항만 육성을 통해 화려했던 과거의 명성을 재현하고자 하는 일본 사이에서 우리는 길고 숨막히는 경쟁을 해야 할 상황이다.

이러한 때 이뤄진 이번 '선언'은 우리 항만에 대한 불안을 일거에 해소해 더욱 많은 선사와 화주가 우리 항만을 이용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며, 최근 활발히 진행 중인 항만 배후부지 기업유치 프로젝트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선언은 비단 항만뿐 아니라 우리나라 노사 전반의 신뢰와 협력을 한 차원 높이는 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연간 8조원 수준의 국가 물류비 절감과 물류시간의 획기적 단축을 목표로 '국가물류개선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대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류를 실제 담당하는 주체 간의 이해와 협력이 긴요하다. 이번 평화선언이야말로 이를 가능케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노사 평화를 위한 화합의 첫 단추를 산고 끝에 항만에서 끼웠다. 항만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주무장관으로서 어려운 여건에도 상호 신뢰와 양보의 정신으로 대타협을 이끌어낸 항운노조와 항만물류협회 모두에게 감사를 보낸다. 이제 이러한 화합의 정신이 우리 경제 전체로 샘물처럼 흘러가기를 기대해본다.

장승우 해양수산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