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소득 1만불 시대의 '문화식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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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건강에 해로운줄 뻔히 알면서도 육류와 설탕만을 섭취하는 사람은 없다.그래서 그런가.영양과다를 염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회식자리에서도 삼겹살과 족발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고,편식을 피하려는 세태인심을 알아차린 슈퍼마켓에선 S석 에 싱싱한 채소류를 진열한다.과연 삶의 질을 따지는 개인소득 1만달러 시대에 어울리는 식생활이다.하지만 「식후(食後)의 금강산 구경」인 문화생활에서는 소득에 걸맞지 않은 편식습관을 고치지 못하고있다. 너나없이 이 시대를 영상시대라고 힘줘 말하지만 소비되는「영상제작물」들의 영양가를 따지고 보면 온통 설탕과 동물성지방같은 것들 뿐이다.동네 비디오가게에 들러 대여순위를 알아보면 할리우드제 폭력.섹스물과 홍콩제 액션물,로맨틱 코미 디를 내세우지만 교묘하게 섹스를 파는 국산영화 일색이다.영화사(史)의 고전.명작들은 아예 비치돼 있지 않거나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는 찬밥신세다.
우리 사회가 이렇듯 귀한 것을 홀대하고 하찮은 것들을 존대하는 비문화.반문화적으로 흐르는 까닭은 무엇인가.아마 1차적인 욕망과 욕구 충족을 위한 경제활동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데 그 까닭이 있을 터이다.생활이 워낙 복잡 하고 골치아픈 것 투성이라 대다수 사람들은 「문화」를 스트레스 해소용으로활용하려고 한다.탓할 일만은 아니라 하더라도 편식과 과식이 건강에 나쁜 것처럼 영화(비디오)에 대한 편식은 우리들의 정서와정신건강에 해롭다.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마음먹고 예술영화를 골라 보고 있노라면 형식은 고사하고 내용조차 어렵고 황당해 머리에 쥐가 날 판이다.바로 이런 점 때문에 뜻있는 개인과 단체에서 출시하는 명화 비디오는 보통사람들의 「영화보기」의 길잡이가 된다.
예컨대 『시민 케인』을 비롯해 이미 정평이 난 명작만을 내놓는 「시네마테크」의 걸작 시리즈는 영상문화 식단의 균형을 잡아주는 품목들이다.올해가 「문학의 해」라는 말은 「문화의 해」라는 말이기도 하다.명작 비디오로 안방극장의 질(質 )을 높이는원년(元年)으로 삼자.몸도 튼튼하고 마음도 튼튼해야 진짜 건강한 삶이 아닌가.
이세룡 시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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