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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공화당 조직 이끈다” ‘코리아 파수꾼’의 꿈 & 야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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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케인의 ‘킹메이커’ 자원

▶지난해 공화당 고위 당원들의 집회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가 연설 뒤 임 총재와 반갑게 악수하고 있다.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참 한국이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이 북한의 위협을 너무 안이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정말 전쟁을 피하고 싶으면 미국과의 튼튼한 공조 속에서 북한의 핵 폐기를 끌어내야 합니다.”

임 총재는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 측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공화당 내 돌아가는 사정에 밝은 임 총재는 지난해 매케인이 공화당 대선 주자가 될 가능성을 일찌감치 예견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미 대선 경선이 막을 올리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임 총재는 워싱턴에서 기자 등 지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매케인을 눈여겨보라”고 한마디 던졌다.

당시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1순위 후보로 거론되던 때였고, 매케인은 사퇴설까지 떠돌던 변방 주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임 총재는 당 핵심 참모진이 지난해 가을부터 매케인 진영으로 소리 없이 이동한 사실을 알고 매케인 돌풍을 예견한 것이다.

임 총재는 지난달 매케인을 공화당 정식 대선 주자로 추인하는 당 최고위원들의 워싱턴 파티에 VIP로 초청됐다. 이 자리에도 임 총재는 기자를 게스트로 등록시켜 데려갔고, 덕분에 기자는 매케인 부부와 나란히 기념사진을 찍는 행운을 누렸다.

임 총재는 “이번 대선에서 매케인이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게 승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한다.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실패와 경제 악화로 매케인이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미국민은 경험 있고 안정감 있는 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또 본선 게임이 시작되면 오바마 후보의 감춰진 결점들이 많이 드러날 거예요. 오히려 매케인 진영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을 더 걱정했습니다. 힐러리는 경험은 물론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같은 정치적 무기들이 많아 힘들다고 봤던 거죠.”

북파공작원동지회 부회장과 경기지부 회장 등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아가던 임 총재는 1972년 도미를 결심한다. 쌍둥이 아들을 유산한 뒤 난산 후유증을 앓던 부인을 위해서였다. 임 총재는 “국내에는 치료법이 없다고 해서 미국으로 간 거죠. 그런데 가자마자 미 공화당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착을 위해 사업거리를 찾으려고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장터를 거닐던 그는 막 불붙은 미 대선 유세 현장을 지나게 된다. 공화당 측이 청중을 모으려고 장터에 마련한 여흥 무대였다. 동양계로 다부진 체구를 지닌 임 총재를 눈여겨본 행사 진행자가 “호신술 시범을 보여달라”고 청했다.

임 총재는 청중 가운데 뽑힌 거구의 미국인 3명을 군에서 익힌 태권도 실력으로 간단히 쓰러뜨려 우레 같은 환호를 받았다. 이때 한 신사가 임 총재 앞에 나타나 “수고했다. 이름이 뭐냐”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면서 “내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내 유세가 있는데 같이 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바로 닉슨 대통령이었다.

임 총재는 다음날부터 닉슨 대통령의 전용기를 타고 미 전역을 누비며 호신술 이벤트를 해주면서 골수 공화당원이 된다.

“당시 일자리도 구하지 못했을 때인데, 쌈짓돈 50달러를 당에 기부하고 바로 당원이 됐지요. 전혀 아까운 줄 몰랐습니다.”

이후 임 총재는 선배의 권유로 캘리포니아에서 폐차업을 시작했다. 겉이 망가진 차는 엔진 등 내장품을, 속이 망가진 차는 겉 몸체를 파는 방식으로 상당한 돈을 벌었다.

이어 1980년 임 총재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한국에 미국쌀을 독점 판매하던 로비스트 박동선 씨가 미 의원들에게 불법 로비를 벌인 혐의로 몰락하면서 임 회장이 판매권을 인수한 것이었다.

“당시 전미쌀재배협회가 공개입찰했는데 내가 301번째로 입찰 등록을 했어요. 그런데 뽑힌 것이죠. 평소 쌓아온 신용이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임 총재는 “쌀 판매 기록을 보니 t당 240달러 선이던 쌀이 한국에 480달러씩에 팔린 데다 연간 50만t인 한국 수요량을 무시하고 100만 t이나 들어간 사실을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또 “얼른 주위를 설득해 t당 246달러로 값을 내리고, 판매량도 37만t으로 줄였지요. 한국 조달청을 찾았더니 청장이 저를 직접 맞으면서 ‘당신은 애국자’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당시 체결한 첫 쌀 판매 계약액이 9,102만 달러였다고 정확히 기억했다.

사업가로 기반을 굳힌 임 총재는 이후 100만 달러가 넘는 선거자금을 여러 차례 공화당에 기부하며 당 고위 인사로 떠오르게 된다. 당내 거물들과 깊은 유대를 맺은 임 총재는 부시 대통령의 오른팔인 칼 로브 전 백악관 정치고문과는 ‘친구’로 통할 만큼 가깝다.

임 총재는 지난해 초 한나라당 대선 경선 막이 오르자 로브를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이명박 후보를 소개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임 총재는 편지에 “한나라당 이 후보는 집권하면 한·미 동맹 복원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라며 “그가 대통령이 되면 만나 좋은 공조를 이루시기 바란다”고 적었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한·미 동맹이 많은 손상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한·미 동맹을 복원할 한나라당 후보, 그 중에서도 한·미 관계에 배려가 깊어 보이는 이 후보를 백악관에 미리 소개해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뛰어난 사업 수완… 재력가로 성공

임 총재는 공화당 상원의원들과도 각별한 사이다. 특히 공화당 상원위원회 위원장인 존 엔슨 상원의원이나 짐 이노프 상원의원과는 허물 없이 지낸다.

“미 상원의원들은 웬만한 나라 대사는 자신의 보좌관들이 만날 상대로 생각할 만큼 프라이드가 높아요. 한국 의원들이 워싱턴에 오면 상원의원 만나게 해달라고 우리 대사관을 조르는데, 실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임 총재는 올 초 엔슨 상원의원과 함께 ‘한·미 캐피털 포럼’을 발족했다. 한국 국회의원들과 정치지망생을 워싱턴에 초청해 미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특강을 듣고, 이들과 지속적 교류를 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임 총재는 또 6·25 참전용사들을 위해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 대사, 루이스 데커트 미 한국전 참전용사회장 등과 함께 한미동맹협의회를 발족하고 매년 지원 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300만 명 중 80만 명이 아직 살아있어요.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의무라고 봅니다. 내친 김에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대해 한마디만 합시다. 미국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이끄는 리더입니다. 자국민은 안 먹는 위험한 제품만 골라 외국에 수출하는 그런 나라는 결코 아닙니다. 한국도 이제는 일류 국가 대열에 서지 않았나요? 근거 없는 헛소문과 감정 대신 상식과 이성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에 정말 도움이 될 것들을 생각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워싱턴■강찬호 중앙일보 특파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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